가죽과 실 사이의 기도

📅 2026년 01월 20일 07시 01분 발행

시장 끝자락의 작은 구두 수선소에 들렀습니다. 유리문 안쪽은 낮은 스탠드등 하나가 밝히는 노란빛으로 가만했습니다. 송진 섞인 왁스 냄새가 은근하게 감돌고, 오래된 라디오에서는 가사보다 숨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노래가 흘렀습니다. 사장님의 손은 마른 나뭇결처럼 얇고 단단했습니다. 밑창을 떼어내고 새 가죽을 덧대며, 송곳으로 작은 구멍을 열고 실을 통과시키는 동작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망치가 탁, 탁, 두세 박자씩 바닥을 울릴 때마다 제 마음도 그 리듬을 따라 고르게 내려앉았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구두들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저마다 다른 발의 모양을 기억하고 있는 신발들, 한쪽으로 기운 굽과 긁힌 코, 비에 젖어 말라버린 가죽의 흔들림. 누군가의 하루가 이곳까지 와서 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끝을 삼키던 날들, 틈틈이 쌓인 미안함, 마음속에서 오래 긁히던 한 구석이 밑창처럼 얇아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닳아졌다는 건 버려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손길을 초대한다는 신호처럼 느껴졌습니다.

사장님은 말이 적었습니다. 대신 손이 말했습니다. 한 땀, 또 한 땀, 끊어질 듯 이어지는 실밥의 인내가 참 오래 견디고 있었습니다. 수선은 화려한 변화가 아니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틈을 찾아 메우는 일이라는 것을, 오늘 그 손이 알려주었습니다. 신앙도 그래서인지 고요한 수선과 닮아 있습니다. 큰 표적보다 작은 균열을 발견하는 눈, 번쩍이는 기적보다 오래 버티는 매듭.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시편 40:2)라는 말씀이, 먼 데서 울리는 약속 같기보다 망치 소리 사이로 조용히 스며드는 응답처럼 들렸습니다.

제 구두의 뒤꿈치는 생각보다 많이 닳아 있었습니다. 돌아보니 지난달 제 걸음도 늘 급했습니다. 일정과 마음이 서로의 속도를 맞추지 못하던 날들, 발의 피곤이 마음의 피곤과 뒤엉켜 신발끈처럼 꽈배기 모양으로 조여들었습니다. 그러나 수선대 위에서 그 닳은 자리들이 무심한 폐기물로 취급되지 않는 모습을 보니 안도감이 일었습니다. 누군가의 손이, 시간을 들여 다시 걸을 길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기도가 그렇게 시간을 건너 우리를 묶어주는 일인 것처럼요.

실이 매듭을 만나 튼튼해질 때마다 작은 소리가 났습니다. 그 소리는 “다시”라는 말과 닮아 있었습니다. 길게 기도하지 못한 밤도, 이름을 정성껏 불러준 아침 인사도, 미루어 두었던 사과를 마음속에서 여러 번 연습한 그 망설임도, 어쩌면 한 땀의 힘을 지니고 있었겠지요. 대단하지 않아도 잊히지 않는 땀들이 있습니다. 그 땀들이 겹겹이 쌓여 우리 발걸음이 방향을 잃지 않게 합니다.

수선이 끝난 구두는 새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발을 넣는 순간 알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나에게 맞는, 그러나 이전과는 다른 단단함. 사장님은 짧게 웃으며 한마디 건네셨습니다. 오래 갈 거라고. 가게 문을 나서며 바닥에 길게 드리운 오후의 빛을 밟았습니다.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발끝에 전해지는 조심스러운 반짝임이 마음까지 전해졌습니다. 닳아 있었던 자리에 실밥이 생기니, 세상이 조금 덜 미끄럽게 느껴졌습니다.

이따금 삶은 말없이 견디는 수선의 시간을 통과합니다. 눈부신 사건은 없는데, 이상하게도 무너지지 않는 날들이 이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 사이에 보이지 않는 실이 여러 번 오가며 우리를 묶어준 것이겠지요. 오늘 제 마음 한쪽에서도 송진 냄새 같은 온기가 천천히 번졌습니다. 버려지지 않고, 고쳐져서 다시 걷는다는 소박한 확신.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어디선가 아주 작은 망치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그 소리가 멀어질 즈음, 오늘의 길이 어느 대목에서 얇아졌는지 마음이 조용히 알려주었습니다. 그 자리에서부터 조금 더 견고해졌다는 사실만이 뒤에 남을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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