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기의 둥근 유리 앞에서

📅 2025년 12월 13일 07시 02분 발행

저녁 등이 하나둘 켜진 골목 끝, 동네 빨래방 문을 밀고 들어가면 낮은 윙 소리와 따뜻한 공기가 먼저 반겨 줍니다. 둥근 유리 너머로 수건과 셔츠가 서로 기대듯 빙글거리고, 빨간 숫자 타이머는 남은 시간을 조용히 줄여 갑니다. 오늘을 조금은 버거웠던 마음도, 그 둥근 유리에 어렴풋이 비칩니다. 이렇게 돌고 있는 동안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지요.

동전이 투입되고 버튼이 눌리면, 그다음은 기다림입니다. 외투를 벗어 의자에 걸어 놓듯, 사소한 염려 몇 가지도 거기에 걸어 둡니다. 문을 열어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순간이 있지만, 뚜껑을 자주 여는 빨래는 오래 젖어 있곤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물기와 열이 스며들고, 섬유 사이 엉킴이 천천히 풀리지요. 우리의 속사정도 그와 비슷해서,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한 것들이 조용한 시간 속에서 차츰 풀려 나옵니다.

구석 진열대에는 주인을 잃은 양말들이 작은 바구니에 모여 있습니다. 서로 다른 무늬가 어색하게 어깨를 맞대고,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는 듯합니다. 살다 보면 꼭 한 짝이 비는 때가 있습니다. 이유를 모른 채 사라져 버린 말, 끝내 맞추지 못한 마음, 마무리하지 못한 일. 바구니 위 손글씨 메모처럼 ‘혹시 당신 것을 찾고 계시다면’ 우리의 하루에도 그런 안내가 붙어 있었으면 싶습니다.

기계가 도는 동안,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 부드러워집니다. 누군가는 휴대전화 화면을 천천히 넘기고, 누군가는 무릎 위 장바구니를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깁니다. 성급함보다 온기가 먼저인 자리에서, 시간은 우리를 조금씩 다르게 빚습니다. 서두르고 싶어도 서두를 수 없다는 사실이, 때로는 가장 친절한 위로가 됩니다.

수건을 꺼내 접을 때, 손끝에 남는 따스함이 있습니다. 네 번 접어 단정히 포개면, 오늘의 분주한 말들이 안쪽으로 눕습니다. 한 칸 한 칸, 서랍이 아니라 마음의 칸을 채우는 느낌이지요. 마치 하나님께서 하루의 가장 끝부분에 향기를 살짝 얹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애가 3:23)라는 구절이 불현듯 떠오르면, 내일의 수건도 새벽의 맑은 공기를 닮아 있을 것만 같습니다.

어떤 얼룩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흔적으로 남습니다. 그렇다고 실패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 흔적은 조심스러움을 가르치고, 다음에 흘리지 않으려는 마음을 남겨 줍니다. 부드러운 삶은 때로 완벽한 깨끗함에서가 아니라, 지워지지 않는 자국을 품은 채 살아가는 태도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입문 곁 거울에 비친 모습이 아까보다 조금 가벼워 보입니다. 무언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아마도 손에 든 따뜻한 보자기 사이사이, 아직 사그라들지 않은 온기일 것입니다. 그 온기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쉽게 식지 않습니다. 가방 속에 넣어 둔 작은 손수건 한 장이 내일 아침을 살며시 시작하게 하듯, 오늘 마음도 그런 온기를 품고 잠들 준비를 합니다.

빨래방 불빛 아래, 둥근 유리는 여전히 느긋하게 돌아갑니다. 어디로도 가지 않으면서도 분명히 달라지는 그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우리 삶에도 이런 회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멈추었다가, 다시 부드럽게. 그렇게 한 겹씩 접어 놓은 오늘이, 내일의 손에 편안히 잡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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