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1월 22일 07시 01분 발행
해가 저편으로 기울고 동네 빨래방 불빛이 하나둘 켜질 때, 둥근 건조기 창 안에서 셔츠와 수건이 천천히 빙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마다 하루의 습기를 품은 채 들어왔을 텐데, 유리 너머에서는 한 가지 속도로만 돌아갑니다. 누군가가 남겨 놓은 영수증이 얇은 잎처럼 붙었다 떨어지고, 주머니에서 빠져나온 동전 두어 개가 바닥에서 가볍게 부딪힙니다. 고요한 웅웅거림이 공간을 채우고, 의자에 앉은 사람들은 말없이 각자의 시간을 지키고 있지요.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안쪽에서는 뜨거운 숨이 쉬어지고 있습니다. 셔츠의 소매가 불룩했다가 가라앉고, 수건의 귀퉁이가 서로 스치며 온기를 나눕니다. 밖에는 비가 조금씩 흩뿌리고, 유리창은 금세 맑아졌다가 또 흐려집니다. 전광판의 붉은 숫자는 남은 분을 조용히 내려놓고, 휴대전화 화면도 어느새 어두워집니다. 빠르게 할 수도, 느리게 할 수도 없는 시간 앞에서 사람들 표정이 조금씩 풀어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낮 동안 마른말처럼 튕겨나온 말 한 조각, 마음속에 접어 둔 걱정, 하지 못한 인사가 하루의 물기로 남을 때가 있으시지요. 손으로 세게 짜면 더 빨리 마를 것 같은 마음이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힘은 더 깊은 주름을 만들곤 합니다. 건조기 안에서는 반대로 일이 벌어집니다. 보이지 않는 바람이 옷결 사이를 드나들며, 스스로 힘을 주지 않아도 조금씩 가벼워집니다. 불 가운데서도 아니고, 큰 바람과 지진 가운데서도 아니었다고 하던 그 말씀이 떠오릅니다. 불 뒤에 들리던 ‘세미한 소리’(열왕기상 19:12). 오늘 이 웅웅거림이 제게는 그렇게 들렸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가끔 유리창에 얼굴을 가까이 대봅니다. 단추 하나가 빛을 받아 반짝이고, 양말은 서로를 잃었다 찾았다 하며 한 바퀴를 더 법니다. 어떤 것은 금방 보송해지지만, 두꺼운 담요는 끝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삶도 비슷하여, 얇은 근심은 금세 말라 떠나가는데, 오래 덮고 살던 슬픔은 마지막까지 온기를 들이키려 합니다. 누군가가 문을 열어 상태를 살피다 아직 덜 마른 것을 알고는 조심스레 다시 닫습니다. 안과 밖의 공기가 갑자기 부딪히면, 온기가 흩어지지요. 그래서 이 기다림은 서두름과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알람음이 짧게 울리고, 문을 여는 순간 특유의 따뜻한 냄새가 흘러나옵니다. 수건은 한결 도톰해졌고, 셔츠의 주름은 말없이 누그러졌습니다. 다 마른 줄 알았던 양말 한 짝이 조금 서늘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때의 감정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한 번에 맞춰지진 않지요. 그래도 가방에 옷을 차곡차곡 넣어 메면, 어깨의 무게가 들어올 때의 감촉이 들어올 때와는 다르게 느껴집니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약간 가볍습니다.
이 시간을 떠올리며 기도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은총을 사는 동전이 아니라, 기다림에 마음을 올려두는 표시 같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바람이 내면을 오가도록, 서둘러 문을 열지 않겠다는 조용한 동의. 둥근 창에 비친 제 얼굴은 여전히 같은 사람인데, 눈동자 한켠에서 긴장이 조금 풀린 것을 보았습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아마 옷이 말라가듯,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이 안쪽에서 조용히 숙성되었기 때문이겠지요.
사랑하는 이를 떠올리면 더디 마르는 감정이 있고, 오래 미뤄둔 사과 한 마디는 첫 회전이 시작조차 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을 때가 있습니다. 건조기는 모든 옷을 한 번에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둥근 창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건조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겹친 수건이 서로에게 바람길을 만들어 주고, 셔츠의 소매는 다른 옷의 그림자를 가볍게 들어 올립니다.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따뜻한 길이 열립니다.
빨래를 들고 나오자, 비는 여전히 가늘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머니 속 손가락 끝이 따뜻했고, 옷감 사이에 남은 미미한 향이 걷는 사람을 따라왔습니다. 오늘도 마음 어딘가에서는 건조기가 돌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그 세미한 소리 속에서, 말려가는 하루의 물기와 아직 남은 서늘함을 함께 느끼며, 한동안 유리 너머를 바라보던 그 시간처럼요. 삶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바람을 타며 천천히 가벼워지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