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기 앞의 둥근 숨

📅 2026년 01월 28일 07시 02분 발행

동네 골목 모퉁이를 돌면 작은 빨래방이 나타납니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면 세제 향이 가볍게 코끝을 스치고, 동전이 투입구를 지나며 내는 맑은 금속 소리가 어딘가 마음을 단정하게 합니다. 벽에 기대 선 플라스틱 의자 몇 개, 그 위로 겹겹이 쌓인 하루의 기다림이 앉아 있는 듯했어요. 기계는 낮은 윙 소리를 꾸준히 냅니다. 누군가의 이불, 누군가의 작업복, 누군가의 작고 해진 티셔츠가 원형의 유리 너머에서 둥글게 돌아요. 도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시간, 그 앞에 앉아 있으니 호흡도 그 속도에 맞추어 느긋해지는 것 같습니다.

바람처럼 빨리 지나가지도 않고 강물처럼 밀려가지도 않는 회전입니다. 어쩌면 삶을 지탱하는 힘은 이런 균일한 도는 소리와 닮아 있을지 모르겠어요. 한 바퀴를 돌아오는 동안 무언가가 조금씩 바뀌고, 다시 한 바퀴를 돌며 그 바뀜이 확인됩니다. 비슷한 자리에서 비슷한 마음을 다시 만나더라도, 방금 전과는 아주 미세하게 다른 온도가 손끝에 전해집니다. 겉에서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 안쪽에서는 물기와 무게가 서로에 기대며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지요. 서두름이 들어설 자리를 기계가 허락하지 않으니, 사람의 생각도 자연스레 쉬어 갑니다.

건조기 옆에 납작한 서랍이 하나 있습니다. 종종 사장님이 그곳을 열어 얇은 먼지층을 조심스레 걷어내는 모습을 보았어요. 아주 고운 보푸라기가 모여 작은 구름 조각처럼 손에 걸립니다. 그걸 버리지 않으면 기계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다고 하시더군요. 듣고 보니 마음에도 그런 서랍 하나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루의 말들에서 떨어져 나온 가는 파편들, 사소한 서운함, 입술에 걸렸다 미처 건너가지 못한 말, 깊게 자리 잡은 걱정의 먼지까지. 티가 잘 안 나지만 차곡차곡 쌓이면 어느 순간 호흡이 거칠어집니다. 그럴 때 가만히 앉아 도는 소리를 듣는 일만으로도 서랍이 열리고, 손끝에 걸린 보푸라기가 하나둘 풀려 나가는 느낌이 들어요.

문득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마태복음 11:28). 그 말이 빨래방의 낮은 소음과 섞이니, 무언가를 당장 해결하라는 부름처럼 들리기보다,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숨을 고르라는 초대처럼 느껴집니다. 오라는 말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자세한 지침이 없다는 사실이 새삼安합니다. 와 있다는 자체가 이미 충분하다는 뜻처럼 읽히거든요. 건조기의 일정한 온기와 속도가 옷감을 지나 마침내 보송한 촉감으로 돌아오듯이, 우리의 마음도 어떤 긴박함을 잠시 내려놓으면 그 자체의 리듬을 되찾는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완벽히 깨끗해진 증거를 찾기보다, 손에 얹었을 때 미소가 날 만큼 따뜻해졌다는 그 느낌이 더 오래 남습니다. 눈에 보기 좋게 각 잡히지 않아도, 구김 사이로 생활의 얼굴이 보이고, 그 생활이 나를 품었던 시간들이 함께 접힙니다. 누군가는 이불을 꺼내며 집으로 돌아갈 길을 생각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직 남은 얼룩을 떠올리며 다음 번을 기약하겠지요.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손바닥에 닿는 온기 때문에 마음이 조금 풀어집니다. 그저 여기 있음이 누군가의 품 안으로 들여지는 일과 아주 멀지 않다는 생각이 따라옵니다.

기계가 멈추고 둥근 문이 열리면, 따뜻한 김이 가볍게 흩어집니다. 수건을 하나 들어 올려 뺨에 대보는 사람도 있고, 서둘러 접어 가방에 넣는 사람도 있어요. 저는 그 사이에 잠깐 손을 멈춘 채, 방금 전까지 눈앞에서 돌고 있던 둥근 시간이 내 안에서도 계속 느리게 돌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완성이라는 말 대신, 충분함이라는 단어가 조용히 자리를 잡습니다. 오늘의 마음도 이 정도 온기면 괜찮겠다는, 작고 고른 안도가 생깁니다. 그리고 다시 문을 밀고 나설 때, 귓속에는 아직 그 둥근 숨이 남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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