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08월 10일 07시 01분 발행
새벽의 방 안은 아직 말수가 적습니다. 주전자에서 올라오는 숨 같은 소리, 커튼 사이를 건너오는 빛의 얇은 결, 잠결에서 깨어나는 발자국이 하루의 첫 제목이 됩니다. 큰 소식은 없지만, 살아 있다는 증거가 조금씩 표면으로 떠오릅니다. 사람의 마음은 종종 소란을 성취로 오해하지만, 삶이 깊어지는 순간은 대개 아무도 알지 못한 채 흙 속에서 일어납니다. 눈에 띄는 표제보다 표제 없는 문장이 오래 머무는 법이지요.
이름 없이 지나가는 하루가 있습니다. 칸만 나뉘어 있는 달력 위에, 설명도 기념일도 없이 적막하게 놓이는 날입니다. 그런데 이름이 없다는 것이 실패의 다른 말은 아닌 듯합니다. 씨앗이 흙 속에서 자신의 모양을 잊고 물과 어둠을 받아들일 때, 겉에서 보기에는 아무 일도 없는 듯하지만, 그 시간에 뿌리는 방향을 배우고 줄기는 기다림의 각도를 익힙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종종 이렇게 스며드는 것 같습니다. 소리치지 않고, 끌어당기지도 밀어내지도 않으면서, 창가 귀퉁이에 앉은 빛처럼, 등을 받쳐주는 의자 그림자처럼 곁을 지켜 줍니다.
마음 안쪽의 물은 늘 잔잔하지 않습니다. 미처 끝내지 못한 일, 해명되지 않은 감정, 오늘도 받아야 할 소식들이 물결을 만듭니다. 때로는 기도마저 ‘빨리’와 ‘더’의 언어로 가팔라집니다. 그러나 고요는 부재가 아니라 충분함에서 오는 표정 같습니다. 곁을 지키는 사랑에는 대사가 많지 않습니다. 오래 머무는 다정함은 장황한 증명이 아니라, 함께 앉아 있는 시간으로 설명됩니다.
엘리야의 이야기에서 마음이 멈춘 적이 있습니다. 거센 바람과 지진과 불이 지나간 뒤에 들렸던 ‘세미한 소리’ 말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열왕기상 19:12). 스포트라이트 같은 장면들이 지나간 다음에야 비로소 들리는 작은 숨결. 사람도 비슷하여, 박수와 한숨 사이에서 길을 잃다가, 어느 순간 자신이 내쉬는 호흡이 가지런해지는 지점에서 낯익은 임재를 알아봅니다. 그때 알게 됩니다. 고요는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라, 관계가 쉬어 가는 시간이라는 것을요.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던 나날들을 생각해 봅니다. 더 세게 버틸수록 더 쉽게 부러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팽팽함은 날카로움과 잘 맞닿아 있고, 부드러움은 생명을 오래 품습니다. 갈대의 비밀은 휘어질 줄 아는 데 있듯이, 고요는 마음이 휘어질 방향을 가르쳐 줍니다. 마음이 나직해지면 두려움의 이름을 틀리지 않게 읽게 되기도 하고, 오래된 상처가 제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를 얻기도 합니다. 분주한 낮에 밀려난 눈물은 해 질 녘 빛을 받아 제 모양을 되찾습니다. 그때 무너짐은 잠깐의 주저앉음으로 바뀌고, 주저앉음은 다시 일어날 여백을 남깁니다.
사랑받지 못했다는 오해에 오래 붙잡혀 계신 분들도 있습니다. 사랑이 도착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랑이 걸어오는 속도가 우리의 기대와 달랐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눈에 띄는 선물과 고백이 없었던 날에도, 식탁 가장자리의 닳아진 자국, 누구도 보지 못한 설거지의 물자국, 보내지 못한 문자 속 멈칫한 호흡이 흔적을 남깁니다. 사랑이 꼭 큰 목소리로 자신을 증명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우리의 침묵 또한 누군가에게 숨 쉴 자리를 내어 주는 다정함이 될 수 있겠습니다. 다만 그 침묵이 거리 두기의 다른 이름이 되지 않도록 마음의 등불을 켜 두는 일, 그것이 우리를 사람답게 합니다.
오늘,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마음 안에 작은 방 하나는 늘 마련되어 있습니다. 문턱이 낮고 창이 하나, 의자도 하나뿐인 방입니다. 그 방에서는 사람은 종종 자신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게 됩니다. 그 이름이 서툴러도 괜찮습니다. 서툰 호명 속에 지난 실패와 수치가 자리를 옮기고, 자리를 옮긴 뒤에야 비로소 웃음이 앉을 자리가 생깁니다. 그 웃음은 환호가 아니라 안도에 가깝고, 안도는 언제나 감사와 이웃합니다.
빛이 서서히 길 위로 내려앉는 시간, 각자의 발걸음은 저마다의 속도로 하루를 지나가겠습니다. 소리보다 마음이 먼저 도착하는 하루였으면 합니다. 말없는 다정함이 우리를 지켜 주고, 우리의 눈동자가 그 다정함을 알아보는 법을 조금 더 배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녁이 되어 돌아올 때, 바람과 지진과 불 속에서 지치지 않으셨기를 바랍니다. 소란의 뒤편에서, 세미한 소리가 오늘도 귀의 안쪽에서 가만히 울리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