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택대 위의 조용한 빛

📅 2025년 10월 26일 07시 01분 발행

지하 상가를 지나던 오후, 작은 구두 광택대 앞에서 걸음이 멈추었습니다. 허리 굽은 장인은 말없이 천을 감아 손가락에 끼우고, 구두의 앞코를 둥글게 문지르고 있었습니다. 왁스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고, 솔이 지나간 자리에서 가죽은 조금씩 결을 드러냈습니다.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반복되는 원의 움직임이 자꾸만 시간을 느리게 만들었습니다.

구두는 새것이 아니었습니다. 회색빛 스크래치가 여기저기 흔적을 남기고, 뒷축에는 얕은 닳음이 보였습니다. 장인은 그 흠집을 지우려 들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 주변을 오래 쓰다듬었습니다. 마치 흠집이 구두의 이야기라면, 그 이야기가 창피해 숨지 않도록 주변에 부드러운 빛을 채워 넣는 일처럼 보였습니다. 원을 그리는 손길이 수십 번 겹치자, 상처는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다른 표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워지는 대신, 품어지는 표정이었습니다.

일상도 그와 닮아 보였습니다. 하루를 건너오며 마음에 잔금이 생길 때가 많습니다. 서툴게 건넨 말의 모서리가 누군가의 가슴을 긁어 놓기도 하고, 자신에게 남긴 실망이 늦은 밤까지 무게를 더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무언가를 단번에 고치고 싶어집니다. 새것이 되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하지만 삶은 종종 즉석의 기적보다, 다정한 반복으로 살아납니다. 단정한 손길이 같은 자리를 다시 찾아오는 것, 잊지 않고 작은 원을 한 번 더 그려 주는 것. 그 사이에 열이 생기고, 열은 왁스를 녹여 빛을 부릅니다. 서두르지 않는 온기 속에서 조금씩 결이 살아납니다.

기도도 비슷한 얼굴을 하고 떠오릅니다. 번듯한 문장 대신, 손에 들린 낡은 천처럼 오늘의 자리로 다시 오는 것. 곧바로 달라지지 않아도, 멈춰 버리지 않는 마음. 단어 몇 개가 소박하게 오가도, 그 반복 속에 숨이 고르고 방향이 정리되곤 합니다. 우리는 때로 변화를 증명하려 하지만, 하나님은 관계를 이어 가십니다. 오늘도 그분이 먼저 우리 쪽으로 작은 원을 그리며 가까워지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라는 말이 불현듯 떠오르는 저녁입니다(이사야 42:3).

광택대 앞의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로 구두를 내어놓습니다. 누군가는 중요한 약속을 앞두었고, 누군가는 그저 오래 신은 것을 더 오래 신고 싶어 합니다. 이유가 달라도 장인의 손놀림은 변하지 않습니다. 제 발에 맞춘 속도로, 필요한 만큼만, 과하지 않게. 우리의 마음도 그와 같다면 좋겠습니다. 거창한 표어 없이, 오늘 필요한 만큼의 빛을 받아 제 길을 계속 걷는 일. 누군가의 걸음과 부딪힐 때 다치지 않도록 가장자리부터 다독이는 일.

문득, 구두의 앞코가 거울처럼 주변을 비추는 순간이 왔습니다. 그 광택 속에는 장인의 어깨와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그림자, 천장의 등을 켠 조명이 어렴히 섞여 있었습니다. 빛은 스스로 빛나지 못하는 것을 통해도 길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이 조용히 전해졌습니다. 상처와 닳음이 감추어지지 않아도, 함께 빛 속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는 듯했습니다.

오늘의 마음 어디에 작은 원 하나가 그려지면 좋겠습니다. 서늘했던 표면이 온기를 기억하고, 흠집의 자리가 새로운 표정을 갖는 그 순간을 기다려 봅니다. 오래 쓰다듬은 가죽처럼, 우리가 걸어온 시간도 은근한 빛으로 답하곤 하니까요. 어쩌면 그 빛은 이미 시작되어, 말없이 우리를 따라오고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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