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1월 03일 07시 01분 발행
시장 골목 끝에서 작은 불빛 하나가 오후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구두수선대 위로 가죽 냄새가 은근히 피어오르고, 얇은 망치 소리가 느린 심장처럼 또각또각 이어졌습니다. 지나가는 이들은 바쁨의 속도로 흘러가는데, 그 앞 의자에는 기다림의 시간이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발끝이 무거워졌습니다. 하루의 무게가 구두 밑창에 먼저 내려앉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윗면을 자주 닦지만, 밑창은 한참 뒤에야 돌아봅니다. 닳는 자리는 늘 비슷합니다. 서두를 때 자주 미끄러지던 가장자리, 서성이던 모서리, 버티느라 눌렸던 뒤꿈치. 밑창은 몸의 습관과 마음의 기울기를 숨김없이 기록합니다. 어디가 얇아졌는지 보면, 요즘 제가 어디에 기대고 서 있는지도 어렴풋 알 수 있었습니다. 무리하게 버틴 흔적이 선명했습니다. 다정함이 먼저 닳는다는 사실도 함께 떠올랐습니다.
수선하는 분의 손은 말이 없었습니다. 쓰다듬듯 먼지를 털고, 기울기를 재고, 천천히 실을 통과시켰습니다. 상처를 덮지 않고 지키는 바느질은 보기에도 단단했습니다. 꿰맨 자리의 선들이 마치 흩어진 하루를 한데 묶어주는 기도처럼 느껴졌습니다. 접착제를 바르고는 작은 히터 곁에 잠깐 놓아두셨습니다. 붙으려면 온기가 필요하다고, 금세 단단해지는 것은 오래 견디지 못한다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기다림 또한 수선의 일부라는 사실이 눈앞에 놓였습니다.
저는 마음의 밑창을 떠올렸습니다. 보이지 않는 아래쪽, 눈에 띄지 않아 더 빨리 닳는 자리.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미안함, 별일 아닌 일에 쉽게 상하는 자존심,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오래 걸리는 돌멩이처럼 신발 속에서 굴러다니던 날들. 겉은 그럴듯해도, 안쪽에서는 자꾸 소리가 났습니다.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리라’(마태복음 12:20)고 하셨지요. 버려도 되는 것은 의외로 적고, 살려낼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다는 약속처럼 들렸습니다.
수선대 앞에 앉아 있으니, 오늘 제 발걸음들이 하나씩 떠올랐습니다. 무심히 지나친 얼굴들, 대답을 아껴서 더 무거워진 대화, 잠깐이면 충분했을 안부. 신발 바닥을 덧댄 것처럼, 마음의 얇아진 곳에도 조용한 덧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일었습니다. 성급함을 조금 덜고, 미안함 위에 작은 실마디 하나를 얹고, 따뜻한 말 한 줄로 음각처럼 자국을 남겨보려는 마음.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새로움이 아니라, 오래 걸을 수 있도록 붙잡아주는 새로움이 그리워졌습니다.
지갑에서 계산을 마치고 신발을 다시 신으니, 바닥이 조금 높아진 만큼 시선도 달라졌습니다. 길이 동일한데도 덜 피곤했습니다. 작은 차이가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골목을 빠져나오는 동안에도 수선대의 망치 소리가 멀리서 따라왔습니다. 마음속에서도 같은 박자가 천천히 이어졌습니다. 오늘의 걸음을 너무 빨리 판단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안도가 생겼습니다. 아직 붙는 중인 것들, 아직 굳는 중인 것들이 있었습니다.
해가 저물면 발보다 먼저 마음이 쉬어야 한다는 말을 오래전에 들었습니다. 오늘 저녁, 발과 마음이 잠시 멈춰 앉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의 속도를 따라잡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닳은 자리 위로 온기가 스며드는 시간. 보이지 않던 밑창에서 시작된 변화가 위쪽까지 은근히 번져 오는 것을, 조용히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망치 소리 대신, 가만한 심장 소리가 길을 이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