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둣방에서 배운 시간

📅 2025년 12월 07일 07시 01분 발행

겨울 끝자락, 해가 낮게 기울던 오후에 동네 구둣방 문을 밀고 들어섰습니다. 솔질 소리가 차분히 이어졌고, 왁스 냄새가 오래된 이야기를 꺼내듯 은근하게 퍼졌습니다. 벽에 걸린 시계는 크지 않았지만 초침이 또렷하게 움직였고, 대기석에 놓인 오래된 잡지들 사이로 먼지가 가볍게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시간도 앉아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마주 앉은 장인은 닳아 빠진 제 구두 뒤축을 살피고는, 손끝으로 가장 얇아진 부분을 조심스레 짚었습니다. 작은 못이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박히고, 새 가죽이 밑창에 맞춰지는 동안, 나무망치의 리듬은 마음을 둥글게 만들어주는 음악처럼 들렸습니다. 장인의 손은 서두르지 않았고, 한 동작이 다음 동작을 부르는 순서가 분명했습니다. 고치는 일에는 늘 순서가 있다는 사실을, 그 손이 대신 말해주었습니다.

잠시 말이 오갔습니다. 장인은 구두는 주인의 걸음을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어디서 자주 멈췄는지, 어느 쪽에 체중을 더 실었는지, 그 습관이 천천히 가죽을 바꾸어간다고 했습니다. 듣고 보니, 제 구두도 저를 닮아 있었습니다. 바쁘다고 다그치던 날의 모서리가, 조심스러워 미루어두던 마음의 흔적이, 밑창 옆면에 작고 어두운 표정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밑창이 먼저 닳듯, 말과 표정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리가 가장 먼저 피곤해질 때가 있습니다. 이유 없이 발끝이 무거워지는 날, 자꾸만 한숨이 목울대를 막는 저녁, 그것이 어쩌면 마음의 밑창이 얇아진 신호였을지 모릅니다. 새 신을 사는 일보다, 익숙한 신발을 정갈히 고쳐 다시 신는 일이 더 큰 위로가 되는 때가 있듯이요.

시편은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신다”고 속삭입니다. 인간의 손이 가죽을 다독이듯, 보이지 않는 손길이 우리 안쪽을 어루만지는 시간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말문이 막힐 만큼 힘들었던 시기에, 이유 없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던 아침이 찾아왔던 것처럼요. 그때 무엇이 달라졌는지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발을 다시 내딛을 수 있게 되는 조용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구둣방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저는 그 변화가 어떻게 오는지 조금은 짐작했습니다. 장인은 오래된 상처를 숨기지 않았고, 흠집 위에 새 가죽을 덮을 때에도 그 아래의 모양을 먼저 존중했습니다. 억지로 펴지 않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맞추었습니다. 고침은 지우는 일이 아니라, 기억과 오늘이 어긋나지 않게 이어주는 일이었습니다. 마음의 위로도 그와 닮아 있을지요. 누구의 말로도 설득되지 않는 밤이 지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가라앉던 감정이 잦아드는 순간, 우리 안의 이야기가 억울하지 않게 존중받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나무망치 소리는 점점 잦아들고, 마른 천으로 마지막 광을 내는 순간이 왔습니다. 가죽은 과하게 빛나지 않았고, 제 걸음에 합당한 정도의 고운 윤기만 남았습니다. 손에 건네받은 구두는 아주 조금 무게가 달라진 듯했는데, 그것이 왁스 한 겹의 힘인지, 기다림의 시간 때문인지 구분하기 어려웠습니다. 변하는 것은 물건만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배웠습니다.

밖으로 나오니 저녁이 깊어 있었습니다. 발을 내딛는 소리가 전보다 둥글게 들렸습니다. 얼마 전과 다르지 않은 길인데도, 신발이 제 발에 다시 맞춰진 것처럼, 오늘이 제 하루에 다시 맞춰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큰 약속이 없어도, 눈에 띄는 기적이 없어도, 이런 작은 조율이 삶을 앞으로 이끌어주곤 했습니다.

구둣방 문이 닫히는 소리가 뒤에서 가볍게 났습니다. 남은 하루가 아직 제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길이 아니라, 익숙한 길을 새 마음으로 밟게 해주는 이 조용한 손길일지 모릅니다. 오늘 밤, 각자의 자리에서 들리는 작은 리듬들이, 닳아 있던 마음의 밑창을 천천히 맞추어 주겠지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이미 충분하다는 고요한 안심이 따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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