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2월 31일 07시 01분 발행
노을이 기운 저녁, 골목 모퉁이 작은 수선대에서 주황빛 전등이 한 뼘의 따뜻함을 내어줍니다. 낡은 앉은뱅이 의자, 반짝이는 못이 담긴 통, 구두약 냄새와 본드의 쓸쓸한 향이 뒤섞인 공기. 수선공의 손등에는 말라붙은 광약 얼룩이 얇게 남아 있고, 작은 망치가 규칙적으로 가죽을 두드립니다. 그 소리가 낯선데도 이상하게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마치 하루 종일 흩어져 있던 생각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앉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오늘 제 구두는 굽이 거의 닳아 있었습니다. 비에 젖었던 자국, 계단 모서리를 급히 내려오던 흔적, 길가의 작은 자갈이 긁고 지나간 자리. 오래 버텼지만 틈은 벌어지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안쪽에서 작은 마찰음이 났습니다. 없는 척 걷다 보면 더 벌어지는 틈처럼, 마음에도 그런 부분이 있음을 떠올리게 됩니다.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녁빛 아래서는 숨길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수선공은 질문이 많지 않았습니다. “많이 걸으셨네요.” 한마디면 충분했습니다. 그는 오래된 굽을 조심스레 떼어내고, 굳은 접착을 긁어낸 다음 새 굽을 맞춰 봅니다. 본드를 얇게 펴 바르고, 잠시 기다렸다가 단단히 눌러 붙입니다. 짧은 못 몇 개가 일정한 간격으로 박히고, 실이 가죽의 가장자리를 타고 돕니다. 기계가 한 번 윙 하고 지나간 뒤, 손끝으로 모서리를 다듬는 동안 구두는 다시 제 모양을 받아들입니다. 말간 표정의 신발을 다시 받아드는 순간, 마음 한켠도 매끈해지는 느낌이 납니다.
사람의 하루도 이와 닮아 보입니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안쪽에서는 소리가 납니다. 말수가 줄고, 쓸데없이 예민해지고, 평소에는 가볍게 넘길 일에 발목이 잡힙니다. 누가 큰수술을 해 줘야 할 것 같다가도, 실은 작은 못 몇 개와 따뜻한 손바닥의 압력이 필요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누군가의 한마디 공감, 부엌에서 끓고 있는 된장의 익어가는 냄새, 창가에 두었던 사진 한 장. 대단하지 않은 것들이 우리 삶의 틈을 붙잡아 주곤 합니다. 믿음도 그런 때가 많습니다. 번쩍이는 기적보다, 견고한 일상의 손길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일.
수선대 옆 벽에 누렇게 빛바랜 종이가 붙어 있었습니다. 흐릿한 글씨로 적혀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편 121:8) 구두를 맡기고 기다리는 자리에 앉아 있으니, 이 말씀이 오늘의 대화처럼 들렸습니다. 우리의 들어섬과 나아감을 아시는 분, 몇 번을 되짚어 걸어도 지켜 보시는 분. 발에 신는 것이 구두라면, 마음에 신는 것은 기억과 약속일지 모르겠습니다.
수선을 마친 구두는 처음보다 약간 무거워졌습니다. 그러나 그 무게 속에 누군가의 시간과 정성이 실려 있습니다. 골목을 나와 걸음을 떼니, 바닥과 닿는 감촉이 분명해졌습니다. 가볍게 타탁거리는 소리, 발뒤꿈치로 전달되는 작은 안심. 오늘 하루가 다 낡아버린 줄 알았는데, 아직 남은 힘이 있는 듯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신발을 문 옆에 나란히 놓고 보니, 서로 기대듯 서 있습니다. 마음도 그 옆에 조용히 기대어 봅니다. 모든 것이 완벽해진 것은 아니지만, 내일을 향해 나아가기에 충분한 자리까지는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충분함이, 오늘 저녁의 축복처럼 오래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