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 아래의 안부

📅 2025년 10월 22일 07시 01분 발행

시장 입구, 오래된 간판과 전구가 낮게 매달린 자리 옆에 손바닥만 한 ‘구두수선’ 글씨가 붙어 있었습니다. 투명 비닐문은 손때로 반짝였고, 스테이플 자국들이 시간처럼 줄줄이 박혀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서니 얇은 라디오 소리가 흐르고, 약간의 접착제 냄새와 검은 광약의 날카로운 향이 뒤섞였습니다. 금속 선반에는 각자의 사연을 달고 온 신발들이 줄지어 있었고, 구석에는 기름이 밴 면천이 접혀 있었습니다. 주인장 손등에는 잔줄기 혈관이 도드라져 있었고, 손톱 가장자리에 광약 얼룩이 박혀 있었습니다. 그는 낡은 굽을 떼어내고, 미세한 못들을 하나씩 빼냈습니다. 망치머리의 둥근 면이 빛을 받아 반짝일 때마다, 일정한 박자가 공기 중에 퍼졌습니다. 딱, 딱, 딱— 그 소리가 제 심장 박동과 어긋났다 다시 맞아들었습니다.

굽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는 묵은 흙이 얇게 붙어 있었고, 아주 작은 돌가루가 몇 알 박혀 있었습니다. 말없이 지나온 길들의 무게가 그 밑바닥에 남아 있었습니다. 주인장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데가 사람을 지탱합니다. 굽이 기울면 허리까지 따라가요. 사람마다 발이 다르니, 닳는 모양도 제각각이고요.”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맴돌았습니다. 겉으로 빛나는 가죽의 광택도 좋지만, 보이지 않는 밑창의 균형이 흐트러지면 걸음이 어색해지는 것처럼, 마음에도 굽과 솔기가 따로 있는 듯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눈에 띄지 않는 것들이 하루를 세우곤 했습니다. 새벽에 물이 끓는 소리를 그냥 듣고 앉아 있는 몇 초의 정적, 노트 한 구석에 지난날 떠오른 이름을 적어 두는 조용한 습관, 식탁에 남긴 따뜻한 국 한 숟가락의 온기, 늦게야 용기 내어 보낸 ‘미안합니다’라는 짧은 메시지. 이런 작은 결들이 마음의 밑창을 두텁게 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반대로, 속으로만 눌러 담은 말들, 오래된 후회 하나,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던 태도는 한쪽 굽을 빠르게 닳게 하는 습관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밑창이 편하면 표정도 편해져요.” 주인장의 농담에 웃음이 났습니다. 농담이었지만, 그냥 농담만은 아닌 것처럼 들렸습니다.

시편의 어느 구절처럼 ‘그가 너의 발이 미끄러지지 아니하게 하시며’라는 말이 그때 조용히 떠올랐습니다. 커다랗게 울리는 기적보다, 못 하나를 곧게 박고 굽 하나를 반듯하게 맞추는 정직함을 통해 미끄러짐이 막히는 장면이 마음에 그려졌습니다.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버텨 주는 것들, 이름 없이 제자리를 지키는 것들, 그 사이로 보이지 않는 손길이 스며드는 듯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발끝에 새로 갈아 낀 굽의 단단함이 조심스럽게 느껴졌습니다. 현관 고무 매트 위에는 낮 동안 묻혀 온 모래가루가 얇게 깔려 있었고, 가족들의 신발이 서로 닿으며 놓여 있었습니다. 제 신발을 뒤집어 보니 모서리 한쪽이 확실히 더 많이 닳아 있었습니다. 오래 붙잡던 생각의 무게가 그쪽으로만 쏠려 있었던 걸까요. 새 굽의 색은 아직 반질했고, 가장자리의 선이 똑바로 서 있었습니다. 발을 신자, 발바닥에서부터 얇은 탄력이 살짝 올라왔습니다. 호들갑스러운 변화는 아니었지만, 몸이 스스로 균형을 다시 찾아가는 듯한 미묘한 안도감이 퍼졌습니다.

오늘은 겉모습보다 밑창의 안부를 먼저 묻고 싶은 저녁입니다. 제 마음의 밑창도 괜찮은지, 얇아진 곳은 없는지, 덧댈 자리는 없는지, 스스로에게 조용히 귀 기울이게 됩니다. 수선집에서 들리던 망치의 박자가 서두르지 못하게 했듯이, 삶에도 저마다의 박자가 있다는 사실이 위로처럼 다가옵니다. 누군가의 성실한 손길로 굽이 제자리로 돌아오듯,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걸음을 곧게 세워 주는 이가 계시다는 생각이 마음을 다독입니다. 시장의 소란이 가라앉은 밤, 현관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들이 한숨 길게 내쉬는 듯 보입니다. 내일 이 작은 탄력이 어디까지 데려갈지, 그 끝에 어떤 얼굴이 기다릴지, 뭐라 단정하지 못한 채 그저 고요히 궁금해집니다.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