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한 단추 하나

📅 2025년 10월 05일 07시 02분 발행

아침에 동네 세탁소 앞을 지났습니다. 자동문 틈으로 따뜻한 김이 밀려나오고, 다리미가 옷감을 지나갈 때 나는 짧은 ‘칙’ 소리가 골목에 작은 숨처럼 퍼졌습니다. 하얗게 불어나는 수증기 속에 사장님의 손이 바쁘게 오갔습니다. 분필 자국을 털어내고, 주머니 모서리를 톡톡 두드리고, 꽂아둔 얇은 종이 태그를 한 번 더 눌러주는 그 동작이 이상하게 마음을 붙잡았습니다.

제가 맡겨 두었던 셔츠를 찾으러 안으로 들어가니, 사장님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단추 하나가 조금 위험해 보여서요. 그냥 두면 출근길에 떨어질까 봐, 실을 더 얹어 두었어요.” 셔츠 앞섶의 작은 원이 새 실로 단단해져 있었습니다. 대단한 수선도 아니고, 눈에 확 드러나는 변화도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습니다. 새로 산 옷처럼 반듯해진 게 아니라, 내 옷의 하루가 다시 시작될 준비를 마쳤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음속에도 그런 단추가 있지요. 사소해 보여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어느 날 갑자기 툭 풀려 버리는 것들.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서운함, 아무것도 아닌 말에 걸려 남는 가시, 오래 접어 넣었다고 생각한 불안이 모서리를 드러내는 순간들. 그럴 때면 내 안의 옷감이 얇아진 건 아닌가, 단추구멍이 늘어난 건 아닌가, 스스로를 다그치기 쉽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그 작은 손길을 보며, 마음이 조용히 바뀌었습니다. 누군가의 조심스러운 바늘질이 한 사람의 하루를 지켜 주는 때가 분명히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눈물과 큰 소리가 아니어도, 아주 작은 실 몇 가닥이 하루를 붙잡아 줍니다.

성경에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신다는 말씀이 있지요.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신다 하셨습니다. 날카롭고 강한 손놀림이 아니라, 부러지지 않게, 꺼지지 않게 하는 부드러운 주의. 오늘 세탁소에서 본 동작이 그 말씀을 조용히 떠올리게 했습니다. 옷감의 결을 따라 다리미가 천천히 미끄러질 때, 주름은 완전히 사라지진 않지만 그 나름의 방향을 찾습니다. 살아온 흔적이 지워지는 게 아니라, 제자리를 얻는 것이겠지요. 주름이 빛을 만나면 그림자가 부드러워지듯, 마음의 자국도 온기를 만나면 새로운 결이 생깁니다.

계산대 옆 바구니에는 주인 없는 양말 한 짝과 이름이 흐려진 태그 몇 장이 담겨 있었습니다. 언젠가 누군가가 와서 찾아갈 물건들. 인생도 그와 비슷해서, 잠시 엇갈리고 홀로 남아 보일 때가 있지만, 각자의 자리를 기억해 주는 손길이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됩니다. 어떤 하루는 기적처럼 환하게 밝아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단추 하나가 다시 제 구멍에 들어가, 오늘의 앞섶이 무너지지 않게 해 준다면, 그걸로 충분한 날도 있는 법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셔츠를 옷걸이에 걸었습니다. 세탁소의 얇은 종이 태그를 떼어내며, 마음속에서도 한 장의 태그가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조심스럽게 다루어 주세요’라고 쓰여 있을 것만 같은 그 표시는,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에게 붙어 있는 문장이기도 하겠습니다. 서로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세상이 다급하게 재촉할 때에도, 우리를 아시는 분의 시선은 급하지 않다는 걸 오늘 김 냄새 속에서 배웠습니다. 다리미판에 펼쳐 놓고, 한 번에 펴지지 않는 면을 다시 올려 천천히 결을 맞춰 가는 그 인내. 그 사이에 흘러가는 시간이, 축복의 또 다른 이름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녁이 오면 이 셔츠를 입고 누군가를 만나겠지요. 완벽하게 매끈한 모습은 아니어도, 제 자리를 찾아 단추가 잠긴 앞섶처럼 마음도 제 자리를 기억한다면, 처진 어깨가 조금은 일어날 것 같습니다. 오늘의 숨결을 지나며, 우리 삶 곳곳에 보이지 않게 얹혀지는 작은 실, 조용한 바늘, 따뜻한 김을 떠올립니다. 그 은밀한 손길 덕분에 우리가 다시 하루를 입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입은 하루가, 누군가의 느슨한 단추 하나를 살짝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만남으로 이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가능성만으로도, 옷걸이 위에서 천천히 식는 셔츠가 오래도록 포근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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