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 재봉틀 앞에서

📅 2026년 05월 16일 07시 00분 발행

골목 안쪽 작은 수선집에 앉아 바지 길이를 맡기고 기다렸습니다. 늦은 오후 빛이 유리 진열장을 비스듬히 통과해 줄자와 분필 위에 얇은 가루를 남겼습니다. 서랍마다 종종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얇은 비닐 봉투에는 각양각색 단추들이 비에 젖은 씨앗처럼 모여 있었습니다. 기름 냄새가 살짝 배어 있는 재봉틀은 낡았지만, 바늘이 위아래로 오갈 때마다 집 한 채의 호흡 같았습니다. 주인 어르신은 제 바지를 무릎에 펼쳐 놓고 흰 분필로 선을 긋더니, 핀을 몇 개 꽂고는 “조금 덧대면 새것처럼은 아니어도 괜찮아져요.” 하고 빙그레 말했습니다. 그 말이 마음 한쪽에 가지런히 내려앉았습니다.

바늘은 한 번 찌르고, 다시 되돌아와 매무새를 단단히 엮었습니다. 박음질 소리가 잔잔한 리듬을 만들 때, 제 안에서 오래 느슨해졌던 기억들이 하나둘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답장을 미루던 문자, 덜 풀린 오해, 마음 한쪽에서 계속 헐거웠던 자책 같은 것들 말입니다. 옷의 겉면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속에서 단단히 이어 주는 시접처럼, 우리 생에도 눈에 띄지 않는 연결들이 분명히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누군가의 작은 배려, 늦은 밤 불 꺼진 부엌에서 담담히 내어오던 따뜻한 물 한 잔, 이름 없이 지나간 기도들이 어쩌면 이 삶을 떨어지지 않게 붙들어 주었을지요. 전도서의 말처럼,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다 하였습니다(전도서 3:7). 찢어짐이 전부인 날도 있었지만, 어느 조용한 오후 수선집 같은 자리에서, 실을 고르고 바늘귀를 통과시키는 손길이 우리를 다시 삶 쪽으로 끌어당겨 준 적이 있었습니다.

주인 어르신은 서랍에서 낡은 상자를 하나 꺼내더니, 바지에 달릴 단추를 고르며 “색이 조금 달라도 이야기만 맞으면 잘 어울리죠.” 하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서 교회 식탁이 떠올랐습니다. 모양도 결도 다른 사람들, 살아온 계절이 다르고, 빛나는 데도 어긋난 데도 각자인 이들이 한 상에 둘러앉아 서로의 자리에 빈틈이 없도록 기대며 앉아 있던 모습. 조건이 맞아서가 아니라, 함께라서 맞아지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가 제 교복을 밤늦도록 꿰매 주시던 기억도 따라왔습니다. 다음 날 학교 운동장에서 넘어져 무릎이 해지고 돌아오면,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헝겊을 덧대고 다시 꿰매셨지요. 그때마다 저는 새 옷을 입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을 옷으로 걸친 느낌이었습니다. 수선은 화려하지 않았고, 눈치채기 어려웠지만, 그 덧댐이 그날의 부끄러움과 서러움을 어쩌다가 지탱해 주었습니다.

재봉틀이 마지막 선을 밟고 섰을 때, 작은 가위가 ‘딱’ 소리를 내며 남은 실오라기를 끊었습니다. 어르신이 바지를 가지런히 접어 건네며, “지나간 올은 잘라 주고, 남은 올은 새로 묶어 주면 돼요.” 하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손에 닿은 천은 따뜻했습니다. 문을 나서며 보니, 유리 위 분필가루가 아직 빛을 머금고 있었습니다. 오늘 내 마음 가장자리에서 헐거워진 무언가도, 이렇게 조금 덧대고, 보이지 않는 안쪽에서 천천히 꿰매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반듯하지 않아도, 눈에 띄게 달라지지 않아도, 바지단처럼 제 걸음을 다시 붙잡아 줄 만큼만 단단해지면 충분하다고 여겨졌습니다. 해가 옆으로 기울어 골목 바닥의 금이 엷게 드러나고,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질 무렵, 제 귀에는 아직 재봉틀의 잔향이 맴돌았습니다. 그 소리와 함께 오늘의 남은 실밥 몇 올이,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조용히 매듭을 찾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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