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 그릇 앞의 고요

📅 2026년 11월 05일 07시 01분 발행

늦가을 해가 어깨를 접고 내려앉던 오후, 시장 끝자락의 작은 옷수선집에 들렀습니다. 오래 입던 코트의 단추 하나가 사라진 자리, 손가락으로 만지면 빈 원이 손끝을 맴돌았습니다. 문을 밀고 들어서니 미싱이 낮게 숨을 고르고 있었고, 스탠드 조명 아래에는 유리 그릇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크고 작은 단추들이 소곤거리듯 겹쳐 쉬고 있었지요. 가게 주인 어르신은 제 코트를 받쳐 들고, 사라진 것의 자리를 조용히 더듬었습니다. 말수가 적은 분이었는데, 손끝은 많이 말해 주었습니다.

그분은 단추 그릇을 뒤적이다가 제 코트의 칼라를 눈여겨보더니, 아주 비슷한 색의 단추 하나를 꺼냈습니다. 약간의 광택, 세월의 흔적이 묻어도 무너지지 않은 둥근 모양, 네 개의 구멍이 적당한 간격을 지키는 모양새. 똑같지는 않았지만, 왠지 이 옷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처럼 보였습니다. 바늘귀에 실이 통과하는 순간, 조용히 안도의 숨이 새어 나왔습니다. 빠르게 달리는 바늘이 아니라, 한 땀 한 땀 시간을 세는 손놀림이더군요. 바늘이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끊어진 자리에 의미가 생겼습니다. 떨어져 나간 것이 돌아올 자리를 찾고, 헐거워진 곳이 다시 힘을 얻는 과정이 그 작은 원 안에서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가끔 단추 하나쯤은 잃곤 합니다. 말 한마디가 어긋난 날, 마음속 다짐이 느슨해진 계절, 오래된 관계의 단추구멍이 마찰에 조금씩 닳아갈 때가 있습니다. 잃어버린 것이 사소해 보여도, 그 빈 자리 때문에 옷깃이 벌어지고, 바람보다 먼저 서늘함이 안으로 스며듭니다. 그럴 때 떠오르는 건 정교한 수선보다, 무엇이 어울리는지 오래 지켜보고 기다려 준 눈입니다. 주인 어르신이 단추를 고르는 그 침착한 순간, 제 마음 한쪽에서도 ‘무엇이 지금 가장 어울릴까’라는 질문이 조용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너무 번쩍이는 답은 아니어도, 오래 입어도 불편하지 않을 실색 하나, 두세 번 더 매듭지어도 풀리지 않을 결 하나. 삶에도 그런 선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늘끝이 마지막으로 매듭을 남기고 실을 잘랐을 때, 어르신은 손바닥으로 단추를 한번 눌러 보았습니다. 목소리 대신 손의 압력으로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듯.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놓였습니다. 이사야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신다”(이사야 42:3). 부러뜨리거나 끄는 대신, 받쳐 주고, 덧대고, 바람막이를 세워 주는 방식의 사랑. 그 사랑은 소란스러운 기적보다는, 그런 작은 수선의 형태로 자주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단추 하나가 제자리를 찾는 일처럼요.

가게를 나와 보니 해는 이미 건물 너머로 기울고, 쇼윈도에 저녁빛이 얇게 붙어 있었습니다. 코트 깃을 여미어 보니 단추가 손끝에 단단히 걸렸습니다. 값은 크지 않았지만, 어딘가 넉넉해진 마음을 들고 돌아오는 길이 더 따뜻했습니다. 오늘 하루도 빈 자리 몇 개를 품고 있었지요. 다 말하지 못한 고마움, 아직 멀어진 채 머뭇거리는 인사, 문장 끝에 망설임만 남긴 편지. 그 모든 것들에도 언젠가 색이 맞는 실이 찾아오고, 맞물리는 구멍을 통해 천천히 고정될 날이 있을 것입니다. 다만 급히 달아나지 않는 손길 아래에서, 우리도 조금 덜 조급해질 수 있겠습니다.

밤이 깊어 옷걸이에 코트를 걸어 두었습니다. 스탠드 불빛이 남긴 둥근 자리에 새로 달린 단추가 은근히 반짝였습니다. 하루의 매듭이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지어졌다는 생각이 스며들었습니다. 빈 자리가 여전히 남아 있다 해도, 이렇게 한 군데가 닫히면 나머지 자리들도 차례를 기다릴 수 있겠지요. 오늘은 그 정도의 위로로 충분했습니다.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