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6월 18일 07시 01분 발행
낡은 코트의 맨 위 단추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집을 나서다 말고 알게 되었습니다. 며칠은 목도리로 가리며 지냈지만, 입김 같은 변명도 오래 가진 않더군요. 동네 수선집에 들렀습니다. 유리 진열장 뒤에 조용히 앉아 계신 주인께 사정 이야기를 드리니, 둥근 통 하나를 꺼내어 뚜껑을 여십니다. 단추들이 서로 등을 부딪치며 작은 소리를 냅니다. 연한 갈색, 너무 진한 검정, 한쪽이 까진 회색. 제 코트와 똑같은 모양은 없었습니다. 대신 비슷한 얼굴들이 저마다 다른 세월을 품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실타래를 몇 번 쥐었다 놓고, 손끝으로 단추의 가장자리를 더듬었습니다. 실을 바늘에 꿰며 눈을 가늘게 뜨는 표정이 참 차분했습니다. 그 손이 왕복하며 구멍을 통과할 때마다, 천이 조금씩 단단해지는 느낌이 전해졌습니다. 열고 닫는 데 쓰이는 건 늘 작은 것들이지요. 사소해 보이는 원 하나가, 가슴께를 모아 줍니다.
기다리는 동안 벽에 걸린 오래된 시계가 짧게 숨을 쉬듯 똑딱거렸습니다. 수선대 위에는 끊어진 지퍼 이빨, 떨어진 장식, 해진 소매 끝이 한데 모여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옷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들이 같은 자리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누구의 옷인지 모르는 단추도, 이름표가 벗겨진 지 오래인 천 조각도, 버려지지 않고 한 상자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잃어버림이 끝이 아니라, 다른 시작이 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이 말하길, 예전과 정확히 같은 단추를 찾는 손님도 있지만, 때로는 거의 비슷한 것이 더 자연스럽게 어울린다고 했습니다. 색이 살짝 다른데도, 어째서인지 전체가 더 살아 보일 때가 있답니다. 완벽한 일치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말이, 옷감보다 제 마음에 먼저 달라붙었습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잃고 나면, 그 자리를 과거의 모양으로만 채우려 애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내 삶, 지금의 관계, 지금의 마음은 조금씩 달라져 있지요. 다른 색의 단추가 새 시간을 닫아 주는 법도 있었습니다.
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매듭을 짓고, 밖에서는 단정한 원만 보입니다. 관계도 그렇지요. 눈에 띄지 않는 기도, 말하지 않고 건네진 수고, 이름 없이 지나간 친절이, 하루의 앞섶을 붙들어 줍니다. 가끔은 우리는 안전핀처럼 급히 고정해 둔 말들 덕분에 시간을 넘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금속의 임시는 녹이 슬어 흔적을 남기곤 했습니다. 다행히 어딘가에는, 천의 결을 아는 손이 앉아 있습니다. 바늘이 오고 가는 사이, 헐거웠던 부분이 다시 힘을 얻습니다. 그분이 상한 마음을 고치시며 얽힌 곳을 싸매신다는 말을 떠올렸습니다(시편 147:3).
주인은 비슷한 단추 두 개를 제게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는 새것이라 표면이 번들거렸고, 다른 하나는 미세한 흠이 있었습니다. 어느 쪽이 좋을지 묻는 눈길이 따뜻했습니다. 잠시 망설이다가, 두 번째 것을 고르게 되었습니다. 그 흠이 제 손을 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옷이 새로 태어나는 순간에도, 지나온 계절이 함께 달리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실이 마지막으로 매듭 지어지는 찰나, 짧고 조용한 당김이 있었습니다. 그 느낌이 묘하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매듭은 보이지 않는 쪽으로 감춰졌지만, 그 작은 당김이 하루를 모아 주는 것 같았습니다. 만져 보니 단추에 방금 전의 온기가 남아 있었습니다. 주인의 손 온도인지, 그동안 붙잡고 있던 제 마음의 체온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습니다.
가게를 나서며, 새 단추가 낯설지 않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코트를 여미니 쓸데없이 힘 주던 동작이 사라졌습니다. 잠깐의 틈과 빈자리, 그 새벽 같은 감정들이 단단한 원 하나 아래로 천천히 모였습니다. 삶이 꼭 닫히는 방식은 때로 거창하지 않다는 사실이, 오늘 따라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생각해 보니, 우리 각자에게도 작은 단추 상자가 하나씩 있었습니다. 미처 쓰지 못한 좋은 말 몇 개, 누군가에게 빌려주고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았던 시간들, 불쑥 떠올랐다가 놓친 안부 하나. 언젠가 누군가의 빈자리에 살짝 얹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완전히 똑같지 않아도, 충분히 닮은 마음이면 괜찮습니다. 그런 마음이 하루의 앞섶을 조용히 닫아 줄 수 있습니다.
수선집 문 손잡이를 잡았던 감촉이 아직 손바닥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이라는 옷감도 곳곳이 닳아 있겠지요.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맺히는 작은 매듭들이 우리를 허물어지지 않게 붙들고 있을 것입니다. 어느 한때, 누군가의 단추 상자에서 꺼내진 따뜻한 원 하나가, 오래 잃어버렸던 평안과 닮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