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 상자 옆의 저녁

📅 2026년 03월 05일 07시 01분 발행

부엌등을 낮추고 식탁 모서리로 의자를 끌어오면, 작고 둥근 상자 하나가 자리를 차지합니다. 오래된 단추들이 서로의 등을 기대고 앉아 색을 숨기듯 빛을 머금고 있지요. 오늘은 떨어진 단추를 다시 달아야겠다 싶어 바늘과 실을 꺼내 놓았습니다. 바늘귀를 더듬는 순간마다 호흡이 조심스러워지고, 한 번에 통과되지 않으면 눈썹이 미세하게 모아집니다. 이 소소한 몸짓이 묘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곤 합니다.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실 한 올에 하루의 굵기를 빼곡히 꿰는 기분이 듭니다.

어릴 적 어머니 무릎 앞에 앉아 지켜보던 손놀림이 불쑥 떠오릅니다. 겉에서 매듭이 보이지 않도록 안쪽에서 올려 묶고, 한 바퀴 더 감아 단단히 고정하시던 모습. 그게 다였는데, 그 다만큼이 옷을 오래 입게 했습니다. 새것은 환하지만, 오래 입은 옷은 몸의 선을 알고, 주머니 속 깊숙이 작은 이야기들을 묻어두지요. 떨어진 단추 하나가 허전함을 부풀릴 때가 있습니다. 새로 사는 쪽이 쉽겠다 싶다가도, 어느 저녁에는 그 허전함을 붙잡아 앉혀 놓고 천천히 바늘길을 열어봅니다. 손끝이 자꾸 일을 배워왔던 대로 움직입니다. 돌아오고, 스쳐가고, 다시 돌아오는 둥근 길. 한 땀의 반복이 빠져나간 자리를 조금씩 메웁니다.

사람 사이의 마음도 단추처럼 가장 자주 스치는 곳이 먼저 헐거워지지요. 말끝과 눈빛 사이, 잘 보이지 않는 틈이 살짝 생기고, 그 틈이 날마다 닳으면 어느 순간 탁, 소리와 함께 떨어집니다. 그때를 지나고 나면 번쩍이는 해결책보다, 작은 한 땀이 더 가까이 느껴집니다. 식탁에 숟가락을 하나 더 얹어두는 일, 괜찮다는 말에 묵직한 침묵을 덧붙이지 않고 그냥 놓아두는 일, 서둘러 해명하지 않고 다 들었다는 표시로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는 일.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안쪽에서 매듭을 지어주는 몸짓들입니다. 겉면은 말끔하고, 속면에는 조심스러운 단단함이 남습니다.

기도도 종종 바늘귀 같습니다. 쉽게 꿰어지는 아침이 있고, 아무리 눈을 비벼도 잘 보이지 않는 밤이 있습니다. 실이 엉키면 손을 멈추고 숨을 골라야 했듯, 마음이 꼬일 때는 억지로 잡아당기지 않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사이사이, 무릎 위에 얹은 조용함이 하늘을 가까이 데려오곤 합니다. 크게 내리치는 변화보다, 눈에 띄지 않는 매듭 하나가 하루를 지탱해 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주의 인자와 긍휼이 아침마다 새로우니”(애가 3:23)라는 말씀이 이 작은 수선과 닮아 보입니다. 크게 고쳐 달라지기보다, 다시 견딜 만큼 단정해지는 새로움. 손바닥 안에서 일어나는, 아무도 모를 새벽.

단추를 다 달고 나면 옷을 무릎에 얹어 한 번 뒤집어 봅니다. 겉은 예전과 다르지 않고, 속에는 작은 매듭이 조용히 숨어 있습니다. 빈자리가 채워졌다고 해서 새것이 되진 않았습니다. 다만 오늘을 다시 건너갈 수 있을 만큼 매무새가 정리되었습니다. 하루가 대체로 이런 모양으로 우리에게 도착하곤 하지요. 이름 없이 지나간 수고들, 보고도 말하지 않은 배려들, 느슨해지지 않도록 붙들어 준 보이지 않는 손길들. 부엌등을 조금 더 낮추니, 실의 잔광이 식탁 위에서 빛을 접습니다. 그 빛이 사라진 자리에서 마음이 이상하리만치 가벼워집니다. 무릎 위의 옷처럼, 우리도 어느새 다시 움직일 준비가 된 것인지, 조용한 저녁이 스스로 대답을 아는 얼굴로 앉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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