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6월 05일 07시 00분 발행
오늘 낮, 오래된 간판이 걸린 골목 수선집 앞을 지나쳤습니다. 유리문 너머 밝은 전등 아래, 작은 재봉틀이 일정한 박자로 숨을 쉬듯 소리를 냈습니다. 톱니가 천을 밀어내고, 바늘이 오르내리며 한 땀씩 길을 냈습니다. 주인아주머니의 손끝이 엷은 분필 자국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고, 풀린 실밥은 실뜯개에 조용히 걸려 나왔습니다. 구겨진 바지의 끝단은 다시 접혀 시침이 잡혔고, 헤진 카디건 팔꿈치에는 새 천이 겹겹이 얹혔습니다. 아주머니가 혼잣말처럼 말했습니다. “이건 세 번쯤 더 입을 수 있겠네요.” 그 말이 오래 귓가에 머물렀습니다.
오늘 하루에도 가장자리가 슬며시 풀린 순간들이 있었는지요. 서둘러 내뱉은 말, 끝내 마주하지 못한 표정, 미루어 둔 약속처럼 마음의 솔기가 얇아진 자리들 말입니다. 우리는 대개 완전히 새로워지길 바라고, 낡았다는 사실이 들키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수선집의 시간은 달랐습니다. 버리는 대신 더듬어 되짚고, 지워버리기보다 보강하고, 새것보다 견고한 덧댐을 통해 견딜 수 있는 내일을 만듭니다.
재봉틀 발판이 천천히 밟힐 때마다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은혜가 어쩌면 저런 모양이 아닐까 하고요. 화려한 옷을 한 번에 갈아입히는 힘보다, 이미 입고 살아온 옷에 알맞은 천을 찾아 덧대어 주는 손길. 마지막에 되돌아박기를 해 매듭을 단단히 잡아주는 주의 배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신다”(사 42:3)는 말씀이, 낡았으니 치우자는 소리가 아니라, 아직 입을 수 있다고 속삭이는 목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수선집에는 여백이 많습니다. 시침과 박음질 사이의 조용한 틈, 치수를 재는 동안 흐르는 묵음, 기다림의 호흡. 길이를 정확히 재기 위해 허리를 곧추세우는 그 잠깐의 정적 속에서, 우리 각자의 하루도 치수를 다시 맞춰 보는 듯했습니다. 너무 짧아 답답했던 마음의 단, 너무 길어 바닥에 끌리던 걱정의 자락, 어느 쪽에도 꼭 맞지 않아 어정쩡했던 관계의 접힘들. 그 사이사이에 남겨 둔 여유분, 곧 잘라내지 않고 보관해 둔 희망의 시접이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습니다.
수선이라는 말 속에는 포기가 없습니다. 대신 손때와 시간이 있습니다. 잘못된 바늘땀은 천천히 풀리고, 약한 부분에는 아낌없이 덧감이 얹힙니다. 눈에 띄지 않게 숨겨박기를 해도, 입는 사람의 몸은 그 다정한 수고를 기억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어지고 있는 살림의 손길이 있음을, 오늘 그 작은 가게가 알려주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옷장을 열어보니, 오래전 누군가가 수선해 준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습니다. 정갈한 매듭 하나가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 한켠이 단단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새것 같지는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덧댐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일이 조금 더 견고해진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오늘의 옷자락에서도 풀려나가던 한 올이 조용히 멈추는 순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말없이 이어붙여진 마음의 솔기를 손끝으로 느끼며, 다시 움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천천히 고개를 드는 저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