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댐의 시간

📅 2025년 08월 22일 07시 01분 발행

늦은 오전, 골목 안 구두수선집 문을 밀고 들어섰습니다. 문종소리가 한 번 울리고, 가죽과 본드 냄새가 조용히 올라왔습니다. 작은 라디오에서는 오래된 노래가 낮은 볼륨으로 흘렀고, 주인은 손바닥만 한 망치로 밑창을 살피며 톡톡 소리를 냈습니다. 바깥의 햇빛은 유리문을 통해 길게 바닥을 건너오다, 구석의 낡은 의자 앞에서 멈춰 서 있었습니다.

한쪽 굽이 유난히 닳은 구두를 내밀자, 주인이 손가락으로 가장 얇아진 모서리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여기만 새로 대면 아직 멀쩡합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전체를 바꾸어야 할 것처럼 느껴졌던 무게가, 아주 작은 부위 하나로 모아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때로 삶도 그렇게 느끼곤 하지요. 모든 것이 낡아버린 것 같아도, 실제로는 한 부분이 유독 더 먼저, 더 깊게 닳아 있을 때가 있습니다. 발뒤꿈치가 자꾸만 같은 자리로 기울어지듯, 마음도 습관처럼 한쪽으로 기울어 더 쉽게 닳는 곳이 있나 봅니다.

주인은 본드를 바른 뒤, 부채질로 바람을 보내며 시간을 재는 눈빛이었습니다. 기다림은 대수롭지 않은 일 같아 보였지만, 그에게는 꼭 필요한 과정이었습니다. “말리려면 조금은 기다려야 합니다.” 성급히 붙이면 금세 떨어진다는 것을, 손이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어떤 위로도 그렇지요. 말을 많이 한다고 빨리 붙는 것이 아니고, 이해를 크게 외친다고 깊어지는 것도 아닌 듯합니다. 바람이 지나갈 시간을, 온기가 스며들 자리를, 조용히 내어줄 때가 필요합니다.

작은 못이 몇 개 더해지고, 망치 소리는 점점 가벼워졌습니다. 저는 의자에 기대어, 제 마음의 밑창을 떠올렸습니다. 같은 자리에 스치고 밟히며 생긴 얇은 상처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지나간 오해, 자책의 발자국들. 모든 걸 새 것으로 갈아치우고 싶을 때가 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멈추어 섰던 날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런 날들에도 이상하게 하루는 흘렀고, 그 사이 보이지 않는 덧댐이 조금씩 이루어졌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시편 147편 3절). 말씀은 대공사가 아니라, 필요한 자리에 필요한 만큼 닿는 손길을 떠오르게 합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방식은 아마 이런 것이겠지요. 눈에 띄는 전면 교체가 아니라, 가장 얇아진 곳에 조용히 더해지는 배려. 티가 조금 나도 괜찮은 덧댐. 살아온 표정이 드러나는 자국이니 부끄럽지 않은 흔적입니다.

수선이 끝난 구두를 건네받을 때, 주인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제 한참 더 걸으시겠어요.” 말 한마디가 발끝까지 닿는 느낌이었습니다. 구두의 굽은 새것과 낡은 것이 나란히 붙어,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고 있었습니다. 빛에 비추어 보면 경계가 보이지만, 그 경계 덕분에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럴지 모르겠습니다. 덧댐이 있다는 사실이 약함이 아니라, 계속 걸을 수 있다는 표지가 되는 일.

수선집 문을 나서며 바닥에 남은 햇빛 자리를 다시 보았습니다. 아까보다 조금 짧아져 있었습니다. 해는 늘 움직이고, 빛은 자리를 바꾸지요. 덧댐에도 시간이 필요했고, 시간은 새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우리의 하루에도 그렇게 작은 자리들이 있습니다. 깊은 숨 하나 들이는 틈, 말끝을 가만히 놓아주는 틈, 마음이 저절로 식는 틈. 그 틈 사이로 보이지 않는 손길이 드나들어 얇아진 곳을 만져주는 것 같습니다.

걷다 보면, 오늘도 어딘가에서 모서리가 먼저 닳겠지요. 그래도 아침의 밝음과 저녁의 온기 사이에, 작은 수선이 한 번쯤 일어나기를 생각해 봅니다. 라디오의 낡은 노래처럼 익숙한 위로가 낮은 볼륨으로 흐르고, 망치 소리가 가만가만 울리는 순간이 우리 각자의 하루에도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발끝에서 시작된 단단함이 마음으로 올라와, 다시 길을 낼 수 있도록. 그 길 위에 난 자국들이,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를 조용히 들려주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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