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댐의 시간

📅 2026년 06월 03일 07시 01분 발행

오후 빛이 얇게 눌어붙은 골목 끝, 작은 수선집 문을 밀고 들어섰습니다. 가죽 냄새가 먼저 말을 걸고, 유리 진열장에는 짝을 기다리는 구두들이 비스듬히 서 있었습니다. 선풍기는 느리게 돌고, 돋보기를 쓴 어르신의 손등엔 오래 쌓인 광이 났습니다. 망치가 못 머리를 두세 번, 살피듯 두드리는 소리가 방아처럼 고르게 울렸지요.

밑창이 헤진 구두를 내밀자 어르신이 뒷굽을 들어 빛에 비추어 보셨습니다. “안쪽으로 많이 쏠리시네요.” 그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걷는 습관이 밑창에 지도를 남기듯, 마음의 무게도 일상 가장 낮은 곳에서 흔적을 드러내곤 하니까요.

오래된 밑창을 떼어내고 새 가죽을 재단한 뒤, 접착제를 바르며 어르신이 말했습니다. “붙으려면 시간이 좀 필요해요.” 기다림이 수선의 절반이라는 뜻처럼 들렸습니다. 금방 단단해지는 것보다, 스며들어 서로를 알아보는 시간 끝에 비로소 하나가 되는 일들이 있지요.

문득 오래전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이사야 42:3). 세게 붙잡는 대신, 꺾이지 않도록 기다려 주는 손길. 생활의 모서리에서 헤지고 울던 자리들을, 서두르지 않는 온도로 붙들어 주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찾으러 간 날, 구두는 새 탄력을 얻은 듯 발에 맞추어 몸을 기울였습니다. 바닥을 딛는 소리가 한 톤 낮아졌고, 걷는 리듬도 조금 다정해졌습니다. 발아래의 평형이 돌아오자 마음에도 작게 균형이 생기는 듯했습니다.

하루를 돌아보면, 닳아 없어지는 것이 꼭 손해만은 아니었습니다. 닳아야만 드러나는 쏠림이 있고, 비로소 보게 되는 내면의 경사가 있습니다. 그 각도를 알아차리는 순간, 살아온 걸음이 부끄럽기보다 오히려 고맙게 느껴지곤 합니다.

삶에도 수선집 같은 공구들이 있습니다. 이름 모를 친절, 차 한 잔의 온기, 밤늦게 도착한 안부 한 줄, 때로는 조용한 서운함까지. 이 작은 것들이 서로를 살피듯 우리 속의 못을 고르게 박아 줍니다.

오늘도 각자의 바닥은 보이지 않는 무게들을 받아냈을 것입니다. 말끝에 남긴 숨, 일터의 약속, 식탁에 놓인 침묵, 문고리를 닫는 마지막 힘까지. 그 모든 닿음 속에서 우리 안의 덧댐이 조금씩 굳어 갑니다.

어느 길 한복판에서 문득 멈춰 서게 되는 순간이 있겠습니다. 새로 생긴 윤곽이 우리를 어디까지 데려왔는지 조용히 알아차리게 되겠지요. 아직 남은 거리 앞에서 이상하게 가벼운 마음이 든다면, 기다려 주는 사랑이 이미 우리 안에서 일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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