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1월 30일 07시 02분 발행
점심 설거지를 마치고 나무 도마를 세워 말립니다. 물방울이 칼자국 사이에 잠깐 머물다가 가늘게 흘러내리고, 쪽파 냄새가 아주 옅게 남아 있네요. 환한 주방 조명 아래, 도마의 표면이 고요히 숨 쉬는 것처럼 보여 마음이 잠깐 머뭅니다.
가만히 보면 도마는 늘 상처 입은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얕은 선들이 겹겹이 지나가고, 더러는 깊이 파인 홈도 있지요. 그런데 그 자국들이 이상하게 밉지가 않습니다. 집 밥의 시간과 사람들의 배고픔을 받아 안은 흔적들이라서인지, 상처라기보다는 기록처럼 느껴집니다.
어릴 적 어머니는 소금을 한 줌 뿌려 도마를 문지르고, 물로 헹군 뒤 싱크대 옆에 바짝 세워 두셨습니다. 해가 들어오던 오후, 나무결이 말라가며 은은한 향을 내던 그 풍경이 기억 속에 또렷합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그것이 하루의 무게를 돌보고 보내는 작은 의식이었나 봅니다.
사람의 마음도 도마와 닮은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말의 칼날, 소식의 칼날, 의무의 칼날이 번갈아 내려앉던 날들이 있었지요. 어떤 홈은 지금도 손끝에 만져지는 듯합니다. 그 홈을 탓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 사이로 물이 흐르고, 때때로 눈물이 스며들어 묵은 것을 적셔 주기도 하니까요.
도마는 자신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오늘 들어올 재료를 조용히 받아들 뿐이지요. 무를 놓으면 무의 소리를, 토마토를 놓으면 토마토의 향을 내어 줍니다. 삶도 어쩌면 그렇게 이어져 온 것 같습니다. 매일 다른 재료가 오지만, 받아낼 자리는 같은 곳에 있습니다.
마음을 닦는 일도 설거지와 비슷해서, 크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수건으로 물기를 눌러 주고, 보이지 않는 모서리까지 한번 쓸어 주는 정도지요. 그러나 그 사소한 손길이 다음 식사를 가능하게 하듯, 보이지 않는 자리에 머무는 한 호흡이 다음 시간을 건너가게 합니다.
이따금 도마에서는 양파 냄새가 오래 남습니다. 아무리 씻어도 조금은 스며 있습니다. 그것이 나쁘게만 느껴지지 않습니다. 사랑도, 그리움도, 섭섭함도 그렇게 남아 우리 삶의 나무결이 되곤 하니까요. 시간이 지나면 날카로운 자극은 수그러들고, 향처럼 배어 우리의 표정이 됩니다.
예레미야는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라고 고백했습니다(애가 3:23). 밤새 세워둔 도마가 아침에 한결 가벼워지는 것처럼, 무게가 없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의 성실한 돌봄 속에서 숨이 정리되었기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을 지나는 동안 벌써 몇 번의 칼날이 닿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나무는 부러지지 않았고, 삶도 여전합니다. 손바닥으로 도마를 톡톡 두드리면 맑은 소리가 납니다. 버티는 소리가 아니라, 여전히 쓸 수 있다는 응답처럼 들립니다.
한쪽 끝에는 레몬을 문지른 자국이 연하게 남아 있습니다. 신맛이 지나간 자리에는 이상하게 단내가 머뭅니다. 쓴 하루를 건넌 뒤 문득 겹쳐지는 작은 기쁨도 그런 모양이지요. 누군가의 안부 메시지, 식탁 위 따뜻한 국 한 그릇, 퇴근길 문득 맡은 비누 냄새 같은 것들 말입니다.
저녁이 오면 도마는 제 자리에 조용히 기대어 있습니다. 그 자세가 좋습니다. 무엇을 더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 그러나 내일을 위해 넉넉히 비워 두는 듯한 모습입니다. 마음도 그렇게 기대어 있을 곳이 있으면 다행이지요.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듣는 벽 하나, 기대면 소리 없이 받쳐 주는 품 하나.
내일 또 새로운 재료들이 올 것입니다. 칼날은 다시 내려오겠지요. 하지만 나무결은 더 깊어질 것이고, 그만큼 더 많은 맛을 받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조금씩 그렇게 숙성되어 가는 중인지 모르겠습니다. 상처가 문장이 되고, 문장이 기도가 되어, 조용한 식탁 하나를 더 차려 내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