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2월 22일 07시 00분 발행
정오가 조금 지난 우체국은 낮은 웅성거림과 잉크 냄새로 가득했습니다. 전광판의 숫자가 천천히 바뀌고, 창구 너머에서 고무도장이 잉크패드에 닿았다가 봉투 위에 내려앉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습니다. 둔탁하면서도 확실한 그 소리는, 마치 누군가의 사연에 “받았습니다”라고 적어 주는 인사처럼 들렸습니다.
저울 위에 올려진 작은 엽서 하나가 몇 그램의 무게를 갖듯, 사람들의 손에도 보이지 않는 무게가 실려 있었습니다. 한 자매님은 서둘러 준비한 서류 묶음을 두 손으로 꼭 붙들고 서 있었고, 앞줄의 어르신은 흰 봉투에 쓴 받는 이의 주소를 다시 확인하느라 안경을 잠시 벗었다 끼셨습니다. 가까이 선 아이는 동전이 든 파우치를 바스락거리며, 우표가 고작 작은 그림이라는 사실을 신기해하는 표정이었습니다. 같은 공간에 모였지만 사정은 모두 달랐고, 기다림의 표정도 저마다 달랐습니다.
차례가 되어 창구 앞에 섰을 때, 제 손에서 떠나는 봉투를 직원이 부드럽게 받았습니다. 이름과 주소가 바르게 적혔는지, 우표는 충분한지, 마지막 확인이 끝나고 도장이 내려앉았습니다. 그 짧은 순간, 마음속에서도 무언가가 조용히 정리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보내는 일은 늘 조금의 두려움을 동반하지만, 도장 소리는 그 두려움에 작은 쉼표를 찍어 주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기도도 이와 비슷한 길을 건너는 듯합니다. 마음속에서 오래 만지작거리던 말을 봉투처럼 정리해 올려놓고, 우리 힘으로는 더 보태거나 줄일 수 없는 지점까지 오게 되면, 그다음은 건네는 일밖에 남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느 때에는 대답보다 먼저, “받았습니다”라는 확인이 마음에 와닿을 때가 있습니다. 소포의 행방을 실시간으로 보지 못하듯, 응답의 길도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창구에서 건너간 봉투처럼, 우리의 사연이 누군가의 손에 놓였다는 믿음이 조용히 등을 쓸어줍니다.
성경은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고 속삭입니다. 맡긴다는 것은 힘을 빼는 일이면서도, 그 힘 빠짐이야말로 가장 큰 신뢰의 몸짓이 됩니다. 우체국 직원의 손놀림이 능숙하듯, 우리보다 먼저 길을 아시는 분의 손길도 분명하다는 사실이 오늘 같은 낮의 공기 속에서 이상하게 또렷해졌습니다.
창구 유리에 비친 제 얼굴은 약간 피곤해 보였지만, 눈가에는 안심한 기색이 스며 있었습니다. 번호표를 쥔 손이 조금 가벼워졌고, 어르신의 whitish 봉투도 직원의 미소와 함께 무사히 길을 떠났습니다. 아이는 우표 모서리를 손톱으로 살짝 눌러 보고는, 그 작은 그림이 실제로 무언가를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에 금세 웃음을 보였습니다.
문을 나설 때, 고무도장 소리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한 박자마다 누군가의 사연이 어디론가 출발하고, 그 출발이 또 다른 누군가의 하루를 밝히겠지요. 마음 한켠에도 보이지 않는 도장이 하나 찍히는 듯했습니다. 서둘러 잊어버리고 싶던 염려에는 “여기서 놓아도 됩니다”라는 표지가, 오래 품고 싶던 감사에는 “잘 도착했습니다”라는 표시가 남는 느낌이었습니다.
날이 기울어 유리문에 햇빛이 얇게 걸릴 때, 창구 뒤편에서 마지막 도장 소리가 작게 울렸습니다. 그 소리가 멎고도 한참 동안, 제 귓가에는 잔향처럼 잔잔한 확신이 남았습니다. 오늘 우리 각자의 마음에도, 받은 것과 맡긴 것 사이의 그 얇은 경계에 따뜻한 확인의 도장이 하나 찍혀 있으면 좋겠습니다. 굳이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내면의 우체함에 조용히 도착 소식이 들어오는 저녁이 되기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