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2월 01일 07시 01분 발행
늦은 오후 동네 우체국에 잠시 들렀습니다. 겨울 해가 낮게 누워 창문을 비스듬히 건너오고, 투명한 유리 위로 먼지가 가볍게 떠다녔습니다. 창구에서는 고무도장이 규칙적인 박자로 내려앉고, 붙이는 풀의 희미한 냄새가 마른 종이 사이로 번졌습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순서를 기다리며 봉투를 손에 쥐고 서 있었지요. 어떤 봉투는 한 손으로도 충분히 가벼워 보였고, 어떤 상자는 두 손으로 꼭 껴안아야 했습니다. 모두가 서로의 내용을 모른 채, 겉면의 주소만 읽을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저울 위에 상자가 조심스럽게 올라갈 때마다 숫자가 계단처럼 오르내렸습니다. 그 수치에 따라 붙는 우표의 개수가 달라졌습니다. 무게를 재는 간단한 절차 속에서 이상하게 마음이 조용해졌습니다. 말하지 못한 안부에도 무게가 있고, 겨우 써 내려간 감사에도 무게가 있겠지요. 떠나보내지 못해 내내 품고 있던 생각과 미련 역시, 어쩌면 어딘가에서 잴 수 있다면 꽤 묵직하게 나갈 테지요.
창구 직원의 손놀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름과 주소를 천천히 확인하고, 구부러진 모서리를 펴고, 테이프 끝을 다시 눌러 붙였습니다. 도장이 찍히는 순간, ‘잘 가요’ 하고 속삭이는 듯한 표정이 스치곤 했습니다. 누군가의 손에서 떠나 다른 누군가의 손에 닿을 때까지, 그 사이를 믿어 주는 일이 이곳에서는 매일 일어나는구나 싶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의 편지를 씁니다. 미처 건네지 못한 미안함, 길게 돌아 표현되는 고마움,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그리움이 한쪽에 쌓이다가 때를 만나 봉해지곤 합니다. 때때로 봉투를 여닫다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지기도 합니다. 이 문장을 보낼지, 이 침묵을 보낼지, 어느 주소로 보내야 어긋남 없이 갈 수 있을지. 겉면에는 짧게 적히지만, 안쪽은 길게 접혀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믿음은 그 이야기의 주소를 확인하는 일과 닮았습니다. 누구에게 보내야 하는지,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지, 줄임표를 지나 온전한 문장으로 옮겨 적는 일 말입니다. 눈앞의 상대에게 건네는 말이든, 차마 사람에게는 내어놓지 못해 조용히 하늘 앞에 올려 두는 속마음이든, 언젠가 반드시 닿아야 할 곳이 있겠지요. “나의 때는 주의 손에 있나이다” 하는 옛 시편의 고백이 그리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것도, 이 보냄의 감각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우체국을 나서며 손이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무엇을 보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직 보내지 못한 것을 마음속에서 한 번 더 어루만졌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도장의 잔향이 귀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 소리는 약속처럼 규칙적이고, 작지만 분명했습니다. 우리 안에도 그런 소리가 한 번쯤 메아리친 적이 있지요. 이제 떠나보내도 괜찮다, 혹은 이제 받아들여도 괜찮다 하는, 설명보다 앞서는 확신 같은 것입니다.
창문가 유리에 앉은 해가 기울고, 우체국 앞 보도에 길게 눕습니다. 그 빛 위로 사람들이 조심스레 발을 옮깁니다. 각자의 속도가 다르고, 들고 있는 상자의 모양도 다릅니다. 그러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습니다. 닿아야 할 자리에 닿고, 열려야 할 때에 열리고, 기다림이 낭비가 아니었다는 것을 시간이 알려 주곤 하지요.
오늘의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너무 무거워 저울이 버거워할 것 같은 것, 너무 가벼워 바람에 흩어질 것 같은 것, 아직 문장으로 되지 않아 접지도 못하는 것. 그 모든 것을 안쪽에 고이 넣어 봉해 두는 일이 전부는 아니겠지요. 때가 되면 어김없이 하나씩 떠나고, 하나씩 도착할 것입니다. 도장이 내려앉는 그 순간처럼, 작은 소리로도 충분히 분명한 어떤 신호가 우리를 지나갈 테니까요. 그리고 그 신호가 수신 확인이 되어 주는 날, 마음의 주소록 한 줄이 조용히 업데이트되겠지요. 그 옆에 적힌 작은 별표 하나가, 오늘의 햇빛만큼이나 다정하게 반짝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