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빵집 분홍 체크 식탁보 위의 새벽

📅 2025년 08월 19일 07시 01분 발행

늦여름의 새벽은 공기가 얇습니다. 열기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여전히 눅눅하지만, 하늘은 밤과 낮 사이에서 마지막 숨을 고르는 듯 고요합니다. 오늘은 교회로 향하는 길에 골목 첫집, 전등빛이 아침을 미리 밝혀놓은 동네 빵집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유리문 안쪽, 분홍 체크 식탁보가 깔린 작은 테이블에 흰 밀가루가 별가루처럼 흩어져 있고, 반죽이 둥글게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오븐 문틈으로 누룽지 같은 빵내가 번져나와 새벽 공기와 섞였고, 유리에 맺힌 김이 어제의 피곤까지 살짝 지워주는 느낌이었습니다.

빵집 주인 아주머니는 말없이 손을 움직였습니다. 반죽을 접고, 잠깐 덮어 쉬게 하고, 다시 접어 올리면서 표정이 조금도 급하지 않았습니다. 그 움직임을 보고 있으니, 잘 익은 말투가 떠올랐습니다. 무언가를 증명하거나 앞서가려 애쓰지 않는 말, 상대의 눈높이를 재어가며 멈칫 멈칫 건네는 말. 반죽이 스스로의 시간을 갖는 동안 가장 중요한 일은, 적당한 온도를 지켜주는 것임을 손이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오늘의 분홍 체크 식탁보는 그 온도를 품는 작은 단상처럼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요.

사람 사이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습니다. 마음이 어수선한 날, 곁에서 와르르 해답을 붓듯 말하지 않고, 옆자리를 따뜻하게 비워두는 이의 침묵. 갑자기 풀리지 않는 문제 하나를 들고 잠을 설치는 밤, 누군가 새벽의 빵내처럼 스며드는 안부를 보낸 다음, 아무 말 없이 기다려주는 태도. 기다림이 늘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지만, 기다림을 견디는 시간에 어떤 향기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습니다.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동안 그 속에서는 무수한 작은 호흡이 오가고, 그 호흡이 모여 빵이 됩니다. 사람의 마음도 알아채지 못하는 작은 호흡으로 새로운 결을 만들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문득 떠오른 한 구절이 있었습니다. 누룩이 밀가루 속으로 스며들어 모두 부풀게 한다는 그 비유, 누가복음 13장 21절.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작동하는 힘, 손으로 조절하는 듯하지만 실은 손이 놓아야만 가능한 시간. 믿음의 일들도 그와 닮아 있는 듯합니다. 애써 붙들수록 모양이 무너지고, 한 발 물러난 그 틈에서야 조용한 온기가 잠입합니다. 빠르게 성공과 효율을 말하는 시대에, 느리게 익는 것들의 숨결이 이렇게 새벽마다 살아 있었습니다.

빵집 문이 열리자, 배낭을 멘 학생 하나가 졸린 눈으로 들어왔습니다. 아주머니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학생은 동전 소리가 나는 주머니를 더듬으며 식빵 한 봉지를 집어 들었습니다. 계산대 옆에는 작은 메모가 한 장 붙어 있었는데, ‘오늘 반죽은 천천히’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 문장을 오래 바라보게 됩니다. 천천히라는 말이 변명도 핑계도 아닌, 생명의 속도를 회복시키는 복음처럼 들렸습니다.

밖으로 나오는 길, 새벽 같은 마음을 잠깐 만져 보았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변한 것이 없어도, 누구의 안에서는 지금도 보이지 않는 부풀음이 일어나고 있을 것입니다. 어제의 염려가 오늘의 빵내로 바뀌는 과정, 그 시간을 누가 대신 살 수는 없겠지만, 옆에서 온도를 지켜주는 일은 언제나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홍 체크 식탁보 위로 흩어진 밀가루 가루가, 창밖으로 비치는 여린 빛을 받아 조용히 반짝였습니다. 그 작은 반짝임이 하나의 대답이 되는 새벽이었습니다.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