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6월 08일 07시 01분 발행
비가 한 번 스쳐 간 오후였습니다. 편의점 불빛이 젖은 보도를 길게 끌고 가는 시간, 그 옆에 오래된 공중전화 부스가 서 있었습니다. 유리엔 물방울이 얼룩처럼 남아 있고, 금속 수화기는 오래된 비누 냄새와 손때의 온기를 조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부스 안에 들어서서 주머니에서 동전 두 닢을 꺼내 손바닥에 올려두었습니다. 차가운 금속이 체온을 천천히 빼앗아 가는 동안, 해야 할 말 몇 가지가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그러나 첫 마디는 좀처럼 모양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전화번호가 적힌 작은 메모지 한 모퉁이가 습기에 눅눅해져 있었습니다. 숫자들은 선명했지만 제 마음속 문장은 흐릿했습니다. 때로는 말을 꺼내기 전의 침묵이 가장 어려운 순간이 됩니다. 무엇을 먼저 말해야 할지, 어떤 어조로 건네야 할지, 말하고 나면 되돌릴 수 없다는 생각이 더딘 망설임을 길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 순간 부스 밖 신호등이 노란빛으로 바뀌며 젖은 아스팔트 위에 번졌고, 차들이 멈칫하는 소리가 바깥의 호흡처럼 들렸습니다.
기도도 그럴 때가 있지요. 분명히 나눌 이야기는 많은데, 무얼 먼저 내어놓아야 할지 몰라 입술이 다물리는 때. 혹은 말이 너무 많아 처음과 끝이 엉켜버릴 것 같은 두려움. 로마서의 한 문장이 그럴 때 제 마음에 스며듭니다.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롬 8:26). 그 뒤에 이어지는 약속이 있어도, 저는 이 첫마디에 오래 머물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채로 서 있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그 조용한 확인만으로도 눈가가 뜨거워지는 때가 있으니까요.
수화기를 들어 귀에 대보았습니다. 오래전부터 이 자리를 지키던 기계의 깊숙한 곳에서 낮은 윙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연결되지 않은 숨, 아직 눌러지지 않은 숫자들, 제 손 안의 동전은 여전히 말없이 빛났습니다. 어쩌면 기도는 이런 순간과 닮아 있습니다. 말이 오가기도 전에 이미 들리는 호흡, 다 말하지 못해도 전달되는 진심. 멀리 있는 것 같다가도, 신호음이 울리기 전부터 곁에 계신 분의 기척.
그렇게 잠시 서 있으니, 말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지만 마음의 속도가 달라졌습니다. 급히 달려가던 생각들이 부스 바닥의 물방울처럼 제 자리로 돌아와 고였습니다. 저는 동전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 작은 무게가 오늘의 결정을 바꾸지는 않겠지만, 주머니 속에서 천천히 데워지는 동안 제 마음도 함께 데워질 것만 같았습니다. 아직 말하지 못한 것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요. 다만 미뤄진 말들 사이에 숨을 들이키는 틈이 생깁니다.
부스 문을 밀고 나오자 비 냄새가 한 번 더 스쳤습니다. 바깥 공기는 차가웠지만, 귀 안쪽엔 아까의 낮은 윙 소리가 잔향처럼 머물렀습니다. 누구에게 먼저 전화를 걸지는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 모름 자체가 기도 같았습니다. 이해하려 들기보다, 있는 그대로 제 안의 울림을 들어주는 일. 말없이 함께 서 있는 분을 떠올리는 일. 때가 되면 숫자들은 차례를 찾겠지요. 그때가 오기 전까지, 동전과 숨 사이에서 조용히 데워지는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고, 그렇게 믿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