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빨래방의 오후

📅 2025년 11월 07일 07시 01분 발행

해가 골목 담장에 눕는 시간, 작은 동전빨래방에 들렀습니다. 유리문을 밀자마자 퍼지는 비눗냄새가 하루의 소음과 먼지를 조용히 가라앉히는 듯했습니다. 둥근 창 너머 원통이 느리게 돌고, 흰 양말과 체크 손수건이 물결 속에서 가볍게 흔들렸습니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으니, 차가운 의자와 따뜻한 공기가 서로 기대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모서리에선 라디오가 낮은 볼륨으로 흐르고, 건조기의 숨 같은 소리가 공간을 채웠습니다. 이곳의 시간은 밖과 다르게, 급한 발을 붙잡아 끈질기게 천천히 만듭니다.

젊은 아버지가 작은 티셔츠들을 정성스럽게 반으로 접고, 연세 지긋한 분은 베개커버의 구김을 손바닥으로 쓸어 펴셨습니다. 누군가는 동전 두어 개를 손안에서 굴리다가, 조심스레 투입구에 밀어 넣었습니다. 그 찰칵하는 소리가, 여기서는 종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기다리고 있었지요. 종일 몸에 달라붙은 일의 냄새가, 말로 남긴 미안함과 말하지 못한 서운함이, 가랑비처럼 스며든 걱정이 함께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때로 얼룩은 쉽게 지워지고, 어떤 자국은 희미해질 뿐 다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한 사이클이 끝나고, 조용히 꺼내 접을 수 있다면 오늘은 그만큼 가벼워지는 법입니다. 둥근 창은 작은 제단처럼 저를 앉혀 놓고, 마음 한쪽을 고백하게 만들었습니다. ‘주의 인자와 긍휼이 아침마다 새로우니’(애가 3:23)라는 말씀이, 물 위로 떠오르는 비누거품처럼 고요히 올라왔습니다. 내일의 새로움이 큰 사건으로 오지 않아도, 이렇게 한 바퀴 더 돌고 나면 옷감이 숨을 고르는 것처럼, 우리도 숨을 고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머니를 뒤적이다 보면 뜻하지 않은 것들이 나옵니다. 모래 한 줌, 오래된 영수증, 동그란 단추 하나. 가끔은 그 작은 것들이 돌아가는 동안 부딪히며 깜박깜박 소리를 냅니다. 혼자 중얼거리는 기도 같았습니다. 건조기를 위해 남겨 둔 동전의 무게는 가벼웠지만, 어느새 ‘곧 따뜻해질 겁니다’라고 다짐해 주는 약속처럼 느껴졌습니다. 따뜻함은 크게 오지 않더라도, 천천히 스며드는 법이니까요.

우리는 대부분의 기다림을 싫어하지만, 빨래는 기다림을 통해서만 마무리됩니다. 서두른다고 더 빨리 마르지 않습니다. 물은 서두르지 않고, 비누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젖은 것을 감싸 안고, 충분한 시간을 건넵니다. 그 사이, 잊고 지낸 다정함이 포개져 올라옵니다. 사이클이 끝나고 뚜껑을 여는 순간, 살아 있는 따뜻함이 손으로 전해집니다. 방금까지 소리 없이 감싸 주던 열이, 가만히 볼을 스칩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분명히 있는 온기, 그것이 은총의 온도와 닮아 보였습니다.

문을 나서는 이들이 하나둘 비닐가방을 들고 골목으로 사라집니다. 짝이 맞지 않는 양말을 어쩌지 몰라 잠시 멈칫하는 표정도 보였습니다. 그래도 대부분은 묵묵히 접고, 담고, 돌아섰습니다. 가방이 무릎에 닿을 때 나는 바스락거림이, 심장 박동처럼 규칙적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우리 곁을 걷는 방식도 그러할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얼룩을 오늘 당장 지워 주기보다, 마지막 벨 소리가 울릴 때까지 곁을 지켜 주시는 방식으로요.

밤이 완전히 내리면 빨래방의 불은 꺼지겠지요. 그러나 각자의 팔에 안긴 따뜻함은 쉽게 식지 않을 것입니다. 그 온기가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받쳐 줄 때, 우리는 오늘의 먼지를 조금 덜어 낸 사람으로 다시 저녁에 들어갑니다. 마음에 남은 잔열이 조용히 말을 겁니다. 아직 다 마르지 않은 부분이 있어도 괜찮다고, 내일의 새로움이 어김없이 올 거라고. 그 믿음 하나면 오늘 밤은 충분하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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