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을 떼는 저녁

📅 2026년 02월 26일 07시 01분 발행

밤이 이른 시간, 아파트 단지 분리수거장에 서 있으면 형광등이 낮게 웅웅 울립니다. 젖어 있는 바닥에는 유모차 바퀴가 지나간 굽은 선이 남아 있고, 누군가 흘린 탄산음료의 달큰한 끈기가 장갑 끝에 작게 달라붙습니다. 손에 든 빈 물병은 미지근하고, 그 겉을 감싼 라벨이 손끝에서 조금씩 일어납니다. 붙임풀의 얇은 살결을 따라 조심스레 당기면, 어느 순간 종이가 매끄럽게 미끄러져 나옵니다. 다 떼어냈다고 생각했는데 빛 아래 비틀어보면 투명한 끈적임이 남아 있습니다. 몇 번 더 문지르고, 마지막으로 물에 적신 천으로 쓸어내려야 비로소 병이 가벼워집니다.

옆에서 분류함을 정리하시는 경비 어르신이 장갑을 털며 말없이 지나가십니다. 말수는 없지만 손놀림이 분주하여, 어수선한 것들이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속에서도 무언가 작게 정리되는 기분이 듭니다. 하루 동안 마음을 감싸고 있던 문장들, 해야 했던 말 대신 삼킨 말들, 누군가에게 듣고 돌아온 말들이 한데 엉켜 있었지요. 라벨처럼 쉽게 떨어지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름표가 아니라 낙인 같고, 호칭이 아니라 선입견 같습니다. 어떤 것은 우리가 스스로 붙여놓은 자랑이고, 어떤 것은 오래전 누군가가 남기고 간 불편한 별칭입니다.

라벨을 떼어낸 투명한 병을 빛에 비추면 내용물의 없음이 깨끗이 보입니다. 텅 비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시원합니다. 그럴 때 마음에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비어 있음이 부끄러움이 아니고, 무게가 덜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은혜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지요. 누가 보아도 물병은 더 이상 ‘음료’가 아닙니다. 제 용도와 자리를 다시 찾는 과정에 들어갑니다. 우리도 때로는 붙어 있던 말과 기대를 내려놓고, 다시 제 자리를 찾아가야 할 때가 있는 듯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기억하는 방식이 전부가 아님을, 내가 나를 정의하는 방식 또한 완전하지 않음을, 밤의 작은 일터에서 배우게 됩니다.

성경은 이렇게 속삭입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라벨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부름 속에서 우리는 새 것이 되기보다 먼저 ‘있는 그대로 불림’의 안도를 얻습니다. 어쩌면 믿음의 첫 발걸음은 무언가를 더 붙이는 일이 아니라, 조금씩 떼어내는 일에 가까울지 모릅니다. 비교의 테이프, 체면의 종이띠, 두려움의 얇은 필름이 벗겨질 때,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투명함이 드러납니다.

저녁 공기는 차갑고 조용합니다. 재활용함 뚜껑이 가볍게 닫히는 소리 뒤로, 발소리들이 층층이 멀어집니다. 누군가의 등에 남아 있던 무거운 한 줄의 말도, 오늘 밤만큼은 어딘가에 잘 내려놓여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듭니다. 분리수거장에서 돌아오는 길, 손에 남은 약간의 끈적임을 서로의 안부처럼 느껴봅니다.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사라질 수 있겠다는 조용한 확신이 살며시 따라옵니다. 그리고 그 확신만으로도, 마음은 오늘의 잠을 준비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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