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0월 04일 07시 01분 발행
아침 첫 우체국은 늘 종이 냄새가 먼저 인사합니다. 유리 칸막이 너머에서 테이프가 찢기는 소리가 사각사각 이어지고, 저울 위 숫자는 올랐다가 어느 순간 고요히 멈춥니다. 번호표를 쥔 사람들의 손등에는 각자의 밤이 얇게 남아 있고, 상자 모서리에는 누군가에게 닿으려는 마음이 정성스럽게 겹겹이 감겨 있습니다.
앞사람의 상자는 보기보다 가벼워 보였지만, 저울은 평온하게 진실을 말했습니다. 우리 속에도 그와 비슷한 무게들이 있지요. 보내지 못한 말, 미루어 둔 감사, 자꾸만 늦어지는 사과 한 마디, 그리고 이유 없이 살에 걸리는 이름 하나. 해마다 이사 때마다 함께 옮겨 다니는 낡은 상자처럼, 열어보면 여전히 깨지기 쉬운 것들이 완충지 사이에 숨어 있습니다. 숫자로는 표현되지 않을지라도, 손으로 들면 묘하게 팔을 끌어내리는 것들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조심스럽게 건네 보내고 나면, 어깨가 제 자리를 기억해 다시 내려앉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소포의 겉면에는 발신자와 수신자를 또박또박 적습니다. 제 기도도 가끔 그렇게 주소를 쓰듯 적혀 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 떠올라야 할 이름, 지금 필요한 말 한 줄, 날짜와 시간까지.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이 한 구절은 마치 ‘수취인: 주님’이라고 쓰인 오래된 주소 라벨처럼, 마음의 겉면을 정갈히 펴 주곤 합니다.
직원은 모서리를 한 번 더 감아 주었습니다. 흔들림 속에서도 상자 안이 다치지 않게 하는, 작은 친절의 두께였습니다. 빨간 ‘파손주의’ 스티커가 붙는 것을 보며, 사람 사이에도 이런 표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치더군요. 말의 모서리가 둥글어지고, 다급한 침묵에 완충지가 한 줌 넣어지는 순간들. 그 몇 겹의 배려가, 먼 길을 무사히 건너게 합니다.
고무도장이 잉크를 머금고 ‘탕’ 하고 떨어질 때, 접수라는 단어가 하루의 빈틈에 눌러 찍힙니다. 상자를 맡긴 이의 손이 가벼워지는 그 찰나, 마음에는 묘한 텅 빔이 생깁니다. 허전함이라고 부르기에는 따뜻하고, 안심이라고 부르기에는 조용한 빈자리. 비워진 만큼 길이 나고, 비워진 만큼 서로의 안부가 통과할 통로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물론 끝내 보내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이름을 적기엔 너무 오래 곁에 둔 상처, 어디에 맡겨야 할지 아직 모르는 그리움 같은 것들. 그럴 때는 창구 옆에 놓인 부스러진 종이 완충재가 떠오릅니다. 아침빛 한 줌, 누군가 건넨 짧은 안부, 식탁 위에 김 오르는 국 한 숟가락. 이런 사소한 것들이 빈틈을 채워, 부러지지 않도록 우리 안을 지탱해 줍니다. 언젠가 제때가 오면, 그때는 보다 안전하게 보내질 수 있도록요.
우체국을 나설 때, 등 뒤에서 또 다른 상자가 저울 위에 올려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무엇을 보냈고, 무엇은 아직 품에 남았습니다. 각자의 주소, 각자의 손끝, 각자의 떨림이 서로 다른 이야기로 포장되어 어디론가 떠나갑니다. 문득 떠오릅니다. 내 마음의 소포창구 앞에 오래 머물러 있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언젠가 그 무게를 건네는 순간, 숫자보다 더 또렷하게 기억될 것은, 손이 가벼워지는 그 조용한 한 호흡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