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08월 07일 07시 00분 발행
새벽빛이 방 안의 가장자리부터 천천히 번집니다. 주전자의 입김이 얇은 구름처럼 떠오르고, 창틀에 기대어 있던 어둠이 조용히 뒤로 물러섭니다. 소리라고는 컵과 접시가 맞닿을 때 나는 작은 울림뿐인데, 이상하게도 이런 시간에 마음은 더 많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대단한 사건은 없었지만, 어제도 오늘도 우리 삶을 붙들어 준 것은 대부분 말 없는 다정함이었습니다.
누군가 밤늦게 꺼두고 간 불빛, 문이 닫힐 때 소리가 나지 않도록 끝까지 손을 얹어 주던 습관, 먼저 웃으며 자리를 내어 주던 사람의 시선, 바쁜 와중에도 건네진 “잘 도착했어요” 한 줄의 안부. 버스 기사가 조금 더 기다렸다가 달린 그 3초, 가로수 밑에 바람에 뒤집힌 깔개를 바로세워 놓은 어떤 이름 모를 손. 큰 표정도, 긴 설명도 없었지만 그 무언의 배려가 하루의 무게를 조금 가볍게 만들었습니다. 사랑은 때로 목소리를 낮추고, 드러나기보다 스며들기를 택합니다.
성서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큰 바람과 지진, 불이 지나간 뒤, 엘리야의 귀에 들려온 것은 “세미한 소리”였지요(열왕기상 19:12).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방식이 꼭 요란할 필요는 없다는 고백처럼 들립니다. 마음의 골짜기에 들려오는 그 미세한 숨소리 같은 안심, 이유 없이 가벼워지는 어깨, 알아차리고 나면 이미 곁에 있었던 평안. 믿음도 어쩌면 이렇게 조용한 얼굴을 하고 우리를 기다립니다.
어떤 날은 사랑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마지막 잎처럼 매달리기도 합니다. 환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무도 우리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가 있지요. 그러나 돌아보면, 이름 없이 흘러간 시간 속에 우리를 위해 묵묵히 서 있던 벽 같은 존재들이 있습니다. 설명 대신 밥을 해 주던 손, 해답 대신 자리를 지켜 주던 등, 결과 대신 과정을 함께 견디던 눈빛. 그 침묵이야말로 깊은 말이었습니다.
우리 안에도 그런 다정함이 이미 자라고 있습니다. 말로 꺼내지 못했던 인내, 다시 돌아와 앉는 마음, 서늘한 순간에도 등을 펴게 하는 희망의 습관. 오늘을 지키는 힘은 격려의 함성보다, 주머니 속에 늘 들어 있던 낡은 손수건처럼, 필요할 때 조용히 닿는 것일지 모릅니다. 소란이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는 비로소 서로의 체온을 압니다.
각자의 하루가 다시 시작됩니다. 누군가는 빠르게, 누군가는 더디게. 다만 우리 곁을 지나가는 말 없는 다정함을 놓치지 않게 되기를, 그 은은한 빛이 마음의 깁스를 풀어 주기를 소망합니다. 큰 기적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작은 자비가 여러 번 겹치면, 그 또한 기적이 됩니다. 오늘 당신의 걸음마다 그 고요한 선함이 동행하길, 그래서 스스로를 다그치던 숨이 한 박자 느슨해지길, 보이지 않는 손길이 당신 안팎의 금을 조용히 메워 주길 조용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