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08월 11일 07시 02분 발행
오늘은 말수가 줄어든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해 봅니다. 많이 말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다정함이 자리를 지키는 때가 있지요. 말과 말 사이, 밥짓는 냄새와 머그잔에서 피어오르는 온기 사이,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틈새에서 조용히 빛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빛은 화려하지 않은데, 이상하게 오래갑니다. 괜찮다고 소리치지 않는데도 괜찮아지는 쪽으로 마음을 살짝 돌려놓습니다.
대수롭지 않은 일상이 실은 거대한 배려의 그물에 걸려 있음을 생각합니다. 현관에 놓인 작은 택배 상자를 비에 젖지 않도록 옆으로 옮겨주고 간 누군가, 엘리베이터 문을 조금 더 붙들어 주었던 동네 사람, 약속 시간보다 먼저 와서 숨을 고르고 있던 친구. 그들은 자신이 큰 일을 했다고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루를 무너지지 않고 건너오도록 돕는 것들은 대개 그렇게 이름 없이 지나갑니다.
저도 가끔은 말의 무게가 버거울 때가 있습니다. 목회자로서 위로를 건넬 때, 말을 덧붙일수록 오히려 멀어지는 표정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때 알게 됩니다. 말보다 자리를 지키는 침묵, 함께 있어주는 체온, 뜨거운 차를 권하는 손길이 더 먼저 닿는다는 사실을요. 누군가가 나를 고치려 들지 않고, 판단하지도 않고, 다만 행간을 넓혀주는 순간에 마음은 비로소 자신의 속도를 찾습니다.
성서에는 불과 바람과 지진 다음에 세미한 소리가 있었다고 하지요. 엘리야가 그 얇고 가느다란 숨결에서 하나님을 알아본 이야기입니다(열왕기상 19:12). 크고 놀라운 표적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 같지만, 우리의 영혼은 때로 소란보다 낮은 숨에서 길을 찾습니다. 대답이 아닌 온기, 논리가 아닌 머뭇거림, 완벽한 해명이 아닌 함께 흘리는 한숨에서요.
유년의 어느 저녁을 떠올립니다. 식탁 위 부스러기를 조용히 털고 있던 어머니의 손, 전구가 깜박이는 것을 보고 아무 말 없이 사다리 위에 올라선 아버지의 등. 그 모습은 소리 내지 않았지만, 그 침묵은 ‘너를 사랑한다’라는 문장보다 깊었습니다. 우리 삶에 남아 오래 향을 남기는 것은 종종 그런 장면들입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지는 마음, 꼭 쥐지 않아도 손의 온기가 남아 있는 기억 말입니다.
때로는 사랑받지 못했다는 오해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환한 말들로 확인받지 못한 날이면 혼자가 된 것 같지요. 그러나 조금씩 주변을 더듬다 보면, 누군가의 작은 배려가 자신의 이름을 묻지 않고 지나간 흔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갑 속에 미리 접어 넣어 둔 교통카드, 다 떨어졌을 줄 알았던 치약이 어쩐지 다시 서 있는 아침, 가만히 문을 닫아 소음을 덜어 준 동료. 그 묵묵한 손길들은 자신의 목적을 드러내지 않고, 우리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어쩌면 그 다정함이 우리 앞에 있을지 모릅니다. 종일 내내 우리를 부르지는 않겠지만, 마음 한 귀퉁이가 잠시 느슨해지는 순간, 그것들은 제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바쁜 길 위에서도, 잠깐의 숨 고름 속에서도, 말없는 다정함은 방향을 잃지 않게 도와줍니다. 도리에 밝거나 신념이 단단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의 연약함을 알아보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살리기 위해 큰일을 벌이지 않아도 좋다는 것을, 작은 일이 충분히 크다는 것을, 다정함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이 청명한 고요 속에서 저는 여러분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각자의 사정, 각자의 무게, 각자의 속도로 걷는 발걸음. 그 길 위에 말을 덜어내는 친절이 작은 등불처럼 켜져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깁니다. 울컥하는 순간이 닥쳐도, 그 등불 하나가 어둠 전체를 설명하지 않더라도, 넘어지려는 마음을 잠깐 기댈 수 있게 해 주는 것, 그것이면 충분한 밤이 있습니다.
이제 하루가 펼쳐집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닿는 인사가 있고, 설명하지 않아도 건네지는 신뢰가 있습니다. 바람이 세게 불다 잠잠해지는 저녁처럼, 우리의 마음도 크게 흔들리다 어느 순간 고요로 돌아오곤 합니다. 그 고요의 언저리에서 말 없는 다정함은 손을 내밉니다. 오늘은 그 손을 알아보고, 그 위에 잠시 마음을 눕히는 시간이 여러분께도, 제게도 허락되기를 조심스레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