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창을 갈던 아침

📅 2026년 10월 24일 07시 01분 발행

골목 깊숙이 있는 작은 신발 수선방에 들렀습니다. 유리문에는 손때 묻은 흰 글씨로 ‘수선’이라고 적혀 있고, 안에서는 오래된 시계가 낮게 시간을 헤아리고 있었습니다. 가죽과 본드 냄새가 섞여 어릴 적 아버지 구두장 위에 고개를 괴던 오후가 떠오릅니다. 의자에 앉아 발에서 신발을 벗어 드리자, 주인 어르신이 밑창을 손끝으로 더듬어 보시며 웃으셨습니다. “많이 걸으셨네요.” 그 말 속에 지난 계절들이 함께 묻어나는 듯했습니다.

작은 망치가 툭툭, 규칙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얇아진 모서리를 잘라내고, 새로운 고무를 모양에 맞춰 대고, 본드를 펴 바른 뒤 한참 눌러 붙이십니다. 손바닥의 온기가 재료 사이로 스며드는 모습이 묘하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작업대 위에 떨어진 검은 가루가 햇빛 한 조각을 받아 조용히 반짝였습니다. 눈에 띄지 않던 것들이 이렇게 빛을 갖기도 하는구나, 마음이 따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우리의 하루도 밑창처럼,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부터 먼저 닳아갑니다. 겉으로는 멀쩡한 표정을 하고 서 있어도, 속으로는 이미 비스듬해진 균형 때문에 살짝 휘청일 때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오래된 피로, 미루어진 화해, 스스로를 몰아붙이던 말버릇 같은 것들이 고무 조각처럼 여기저기 떨어져 나가 있지요. 그럴 때 누군가의 조급하지 않은 손길이, 비난보다 관찰에 가까운 눈빛이 큰 힘이 되는 것을 생각합니다. 오늘 제 앞의 어르신 손이 그러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네 발이 미끄러지지 아니하게 하시며”(시편 121:3). 미끄러지지 않게 하시는 일에는 때로 멈추어 눌러 붙이는 시간이 들어갑니다. 본드가 마르는 동안의 조용한 기다림, 그 사이사이로 흐르는 숨과 생각. 급히 신고 나가면 다시 벌어질 수 있기에, 붙잡히는 침묵이 필요했습니다. 기도도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말을 늘어놓기보다, 한 문장을 마음에 대어 조용히 누르는 시간. 그 사이에 보이지 않던 결이 서로 맞추어졌습니다.

새로 덧댄 밑창은 처음엔 다소 낯섭니다. 약간 높아진 느낌,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들리는 다른 소리. 그러나 며칠만 지나면 길의 질감과 맞물려 제 자리를 찾아갑니다. 관계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쑥 얹은 “미안합니다”와 “고맙습니다”가 순간에는 어색하지만, 그 말의 두께가 우리 사이를 오래 받쳐 주곤 합니다. 마음을 딛는 법을 우리는 그렇게 천천히 다시 배우는가 봅니다.

발이 편해지면 허리가 펴지고, 허리가 펴지면 시선이 넓어집니다. 크게 바꾼 것이 없어도 하루가 달라집니다. 신앙도 거창한 결의보다, 보이지 않는 밑창처럼 작고 성실한 습관에서 오래 버팁니다. 식탁 위에서 짧게 올리는 감사, 잠들기 전 하루를 가만히 훑는 숨, 누군가를 떠올리며 이름을 천천히 불러 보는 마음. 그런 것들이 내일의 길바닥과 은근히 손을 맞잡습니다.

수선이 끝났다는 말을 듣고 신발을 다시 신었습니다. 바닥이 단단히 받쳐 준다는 감각이 발끝에 전해졌습니다. 계산대 옆에 놓인 낡은 빗에서 먼지 한 오라기가 떨어졌고, 어르신은 별말 없이 문 쪽을 한 번 바라보셨습니다. 골목으로 나서는 발길이 가볍다기보다, 믿음직했습니다. 오늘도 길은 저마다의 무게를 품겠지요. 다만 밑창 한 겹의 은혜가 더해졌다는 것, 그 사실이 묘하게 마음을 편안하게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제 마음의 밑창을 조심스레 만져 보았습니다. 어디가 먼저 닳았는지, 어떤 손길이 그곳을 살며시 지켜 왔는지. 아까의 망치 소리가 아직도 귓속에 작게 남아 있었습니다. 툭, 툭. 그 단정한 리듬이 오늘의 발걸음과 어울려, 보이지 않는 곳을 든든히 해 주는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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