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창을 고치는 오후의 박자

📅 2026년 01월 26일 07시 01분 발행

동네 골목 끝에 작은 구두 수선집이 있습니다. 문턱은 오래 밟혀 낮아졌고, 주황빛 스탠드가 낡은 작업대 위로 둥근 원을 그립니다. 구두약 냄새와 가죽의 온기가 섞인 공기 속에서, 주인어른의 망치가 못을 탁, 탁, 박아 넣습니다. 규칙적인 소리 사이로 때때로 아주 짧은 침묵이 껴 있습니다. 못이 가죽 속 길을 찾는 숨 고르기 같아, 그 틈새가 이상하게도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창가에는 각자의 시간을 신고 다녔던 구두들이 줄을 섰습니다. 비 오는 날 흙탕을 밟았던 흔적, 병원 복도와 시장 골목, 장례식장 바닥의 광택까지, 밑창에는 말 수 없는 하루들이 묻어 있습니다. 한 켤레를 손에 들어 뒤집어 보면, 가장 많이 닳은 모서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익숙한 편안함을 따라 자꾸 같은 부분으로 무게를 실었던 자리, 서두르던 날 더 깊어진 홈이 남아 있습니다. 사람 사이의 말에도 그런 자리가 있겠지요. 자주 오가던 안부는 반짝이나, 조심스레 건너가야 했던 마음의 모퉁이는 어느새 얇아졌을지도 모릅니다.

수선하시는 분은 주인을 잘 모르면서도 구두를 아주 단정히 다룹니다. 손바닥으로 무게를 재고, 햇빛을 향해 들었다가, 적당한 가죽을 골라 실을 꿰고, 때로는 어긋난 못을 뽑아 다시 자리를 잡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부끄럽게도 애정에 가까운 정성이 배어 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문득 떠오른 말씀 한 줄이 있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며”(사 42:3). 어느 때는 마음의 밑창도 얇아져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금세 아파집니다. 그럴 때 누군가의 성급한 충고보다 먼저, 조심스레 살피는 손길이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됩니다.

새 밑창을 덧대고 나사를 조이며 광을 얹고 나면, 구두는 마치 새 이야기를 품은 책처럼 표정을 바꿉니다. 그러나 지난 흔적이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습니다. 발가락이 닿았던 윤곽, 굴곡의 습관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지워짐이 아니라 덧댐 속에 기억이 머물러, 다음 걸음에 탄력이 됩니다. 우리도 그렇지요. 없어졌으면 하는 장면들이나 부끄럽던 말들이 한 겹 은총 위로 포개져, 언젠가 누군가의 발걸음을 덜 아프게 할 힘이 되기도 합니다.

망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그 박자가 사람의 심장과 먼 친척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뛰다가도 잠깐 쉬어야 다시 고르게 뛸 수 있는 것처럼, 망치질 사이의 미세한 쉼이 전체를 단정하게 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난데없는 일들이 들이닥쳐 마음의 박자가 어긋나곤 하지만, 어긋남 사이에 아주 작은 쉼표 하나가 놓일 때, 삶은 뜻밖에 균형을 되찾곤 합니다. 말없이 내어주는 미지근한 국 한 그릇, 서둘러 닫지 않은 메시지 창, 오래 미뤄둔 감사의 눈짓이 그 쉼표가 되어줍니다.

수선이 끝난 구두를 받아든 손님은 잠깐 미소를 지었습니다. 문밖으로 나서는 첫 발에 바닥이 또렷이 응답합니다. 낯설 만큼 작지만 자신 있는 소리. 비 예보가 있는 골목일지라도, 구두와 길 사이에 두터운 약속 하나가 끼워진 듯합니다. 오늘 걸음은 여전히 내 걸음이되, 어제보다 덜 아플 것 같은 예감.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와 신발장 문을 닫을 때, 가죽 속에 남아 있던 온기가 느리게 사그라집니다. 그 온기가 마음 한쪽까지 스며드는 순간이 있습니다. 아무 말 없이도 내일의 발걸음이 준비되는, 그런 오후의 박자가 오래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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