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귀를 지나가는 오후

📅 2026년 02월 11일 07시 02분 발행

오늘 낮, 식탁 가장자리에 반짇고리를 꺼내 두었습니다. 누군가의 가디건에서 떨어져 나간 단추 하나가 주머니 밑바닥에서 조용히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리접시에 모아 둔 단추들은 모양과 색, 질감이 제각각이었습니다. 옛 코트에서 온 금빛 단추, 아이 옷에서 자주 빠지던 하늘색 플라스틱, 누군가의 셔츠에서 여름 내내 햇빛을 받았을 법한 밀키한 흰색. 살짝 흔들어 보자 유리 바닥에 부딪히는 사소한 소리가 났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방 안 공기가 한 톤 낮아지는 듯했습니다.

바늘귀에 실을 꿰는 일은 늘 마음을 고요하게 만듭니다. 숨을 멈추고, 실 끝을 손가락으로 살짝 비벼 가늘게 모으는 순간, 세상이 작아집니다. 햇빛이 창턱에서 미끄러져 식탁 위에 우유 빛 네모를 만들고, 그 위로 바늘 끝이 번쩍이며 지나갑니다. 바늘귀를 통과하는 실 한 올. 이렇게 작은 통과에도 마음은 묘하게 안심을 배웁니다. 밖으로 티 나지 않지만, 안쪽에서 단단히 묶이는 무엇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겠지요.

단추를 달다 보면, 한 땀 건너 또 한 땀, 간격이 고르지 않아 되돌아가 풀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 오늘도 떠오릅니다. 말과 표정 사이가 어긋난 순간들, 바쁘다는 핑계로 대답을 미루다 길어진 거리, 손에 잡히지 않는 근심이 제멋대로 단추를 굴려 보내던 시간들. 되돌아가 한땀씩 다시 꿰매는 일은 서툴고 더딘데, 그 더딤 속에서 어제의 고집이 조금씩 풀립니다. 매듭은 겉에서 보이지 않게 안쪽에 숨기지만, 숨겼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고 오히려 안에서 옷을 붙들어 줍니다. 말로 다 풀어내지 못한 오래된 서운함도, 언젠가 누군가의 온기를 통해 안쪽에서 매듭 지어지면 좋겠습니다.

복도 쪽에서 택배 상자를 뜯는 소리가 들려오고, 전기 주전자의 물이 조그맣게 끓어오르던 오후였습니다. 시계 초침은 규칙적으로 걸어가는데, 제 손끝의 시간은 은근히 느렸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느림이 제 안의 속도를 맞춰 줍니다. 하늘색 실이 단추 구멍을 한 번 더 지나갈 때, 문득 떠오른 구절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되었다는 약속입니다(마 10:30). 머리카락 한 올, 바늘끝에 매달린 실 한 올, 주머니 밑에서 조용히 기다리던 단추 하나. 작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작기 때문에 더 깊이 기억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마지막 매듭을 지을 때는 늘 손바닥 온기를 살짝 나눕니다. 실이 부드럽게 눌리고, 매듭이 안쪽에 숨어 제 역할을 시작하는 순간, 작은 안심이 가슴에 번집니다. 단추가 제자리를 찾으니, 옷의 앞섶이 다시 맞닿습니다. 큰 변신이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어긋났던 두 조각이 조용히 만나 서로를 붙들어 주는 일. 아마 오늘 제 마음이 바랐던 것도 그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대단한 설명이나 현란한 해결보다, 안쪽에서 보이지 않게 묶여 있는 신뢰 하나, 그 묶임을 견디게 하는 온기 하나.

유리접시 뚜껑을 덮는 소리와 함께 방 안의 빛이 조금 누그러졌습니다. 손에서 가디건을 내려놓자, 갓 달린 단추가 가볍게 흔들렸습니다. 어디선가 미세한 바람이 스치고, 옷감이 그 움직임을 조용히 받아 적었습니다. 말없이 제자리를 지키는 작은 매듭이, 오늘의 마음 한켠에서도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