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귀에 스미는 오후의 빛

📅 2025년 11월 16일 07시 01분 발행

동네 모퉁이를 돌면 작은 수선집이 있습니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면 손가락만 한 종이 맑게 울리고, 천천히 가라앉는 먼지가 전등빛 안에서 미세한 별처럼 떠다니지요. 낮은 라디오 소리가 가게의 숨을 대신하고, 좁은 탁자에는 초록 펠트 조각과 재봉가위, 반쯤 풀린 실타래가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주인 어르신은 돋보기를 아래로 내리고 바늘귀에 실을 꿰십니다. 바늘이 천을 통과할 때마다 ‘스윽’ 하는 가벼운 숨이 납니다. 실이 나온 자리에는 작은 매듭이 숨듯 숨어듭니다.

해진 옷들이 차례를 기다립니다. 소매 가장자리, 주머니 입구, 자주 쓸려 밝아진 무릎. 누구의 걸음과 습관이 그곳에 진하게 닿아 있습니다. 어르신은 굴곡을 따라 천을 받쳐 들고, 가장 약한 곳부터 부드럽게 훑으십니다. 어긋난 결을 바로잡는 동안, 낡았다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게 보입니다. 오래 입었다는 건 그만큼 함께 견뎠다는 뜻이니까요.

하루를 돌아보면 마음에도 이런 해진 자리들이 보입니다. 무심코 건넨 말이 뜯어놓은 한 귀퉁이, 미뤄둔 용서 때문에 자꾸 걸리는 실밥, 기운 빠진 웃음이 남긴 얇은 자리.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손을 대면 삐걱거리는 곳이 있지요. 수선은 새로 사는 일이 아니라, 놓치고 지나간 것을 다시 이어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똑같이 만들 수는 없어도, 함께 살아온 흔적을 존중하며 다시 지지해 주는 일. 삶도 그럴 때가 많습니다.

“그는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시편의 한 구절이 이곳에 자연스럽게 내려앉습니다. 상처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상처를 싸매는 손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놓이게 합니다. 정교한 미싱보다도, 손바느질의 느린 박동이 주는 위로가 있습니다. 완벽한 땀수는 아니어도, 사람의 체온이 남아 있어 오래 갑니다.

다림판 위에서는 김이 조용히 올라옵니다. 눌린 주름들이 뜨거운 숨을 만나며 방향을 달리합니다.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도, 다른 결로 편안해집니다. 우리의 걱정도 그러하겠지요. 없어지지 않는 마음의 자국이, 다른 자리로 옮겨 앉아 숨 쉴 곳을 얻습니다.

저는 오늘, 마음속 해진 부분 몇 곳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름을 붙여보면 이상하게 덜 아픈 때가 있습니다. 그동안 세게 잡아당겨 더 벌어진 데가 있었구나 싶어집니다. 언젠가 누군가가 제 옷에서 삐뚤어진 땀을 보더라도, 그것이 부끄러운 결함이 아니라 살아남은 흔적처럼 보이면 좋겠다는 마음도 듭니다. 타인의 옷자락에서 어딘가 꼬매진 자리와 마주치면, 그 사람의 긴 오후가 잠깐 보이는 것 같아 조심스러워지곤 했습니다.

문 앞의 종이 다시 울리고, 새로 기워진 코트가 옷걸이를 타고 지나갑니다. 손끝이 닿은 자리마다 작은 온기가 남아 있습니다. 조금 느슨한 땀도, 약간 비뚤어진 선도, 이 옷의 서사를 외려 선명하게 만들어 줍니다. 삶을 지나는 우리도 그럴 것입니다. 급히 당겨 풀리게 하던 손을 잠시 놓고, 빛 아래 펼쳐 놓을 용기가 생기는 밤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한 땀의 시간이 우리를 다시 잇고, 내일의 발걸음이 천천히 풀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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