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빛이 머무는 자리

📅 2026년 01월 05일 07시 01분 발행

오후 빛이 가늘게 풀리던 시간, 골목 끝 수선집 문을 밀었습니다. 작은 종이 한 번 울리고, 재봉틀 모터가 낮게 숨 쉬듯 돌아갔습니다. 비닐 커버 속에 매달린 코트들이 서로의 어깨에 기대고 있었고, 바늘 위에 달린 작은 전구가 원처럼 밝아 천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해진 주머니가 있는 외투를 건넸습니다. 주인은 목에 줄자를 걸고, 분필로 천 위에 잠깐 표시를 남기더니 가장 가까운 색의 실을 골랐습니다. 완전히 같은 색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차이가 이상하게 마음을 놓이게 했습니다. 삶도 종종 그랬습니다. 똑같이 되돌릴 수는 없었고, 대신 어울리는 색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습니다.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페달 밟는 소리가 발목으로 전해졌습니다. 재봉틀의 바늘이 오르내릴 때마다 천이 미세하게 떨렸고, 스티치 하나가 눈앞에서 태어났습니다. 상처가 있었던 자리 위로 일정한 간격의 숨결이 누적되듯 이어졌습니다. 라디오에서 점심 뉴스를 말하던 사람이 도시의 소란을 전해줄 때, 이 방 안에서는 아주 작은 평온이 한 땀씩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수선이라는 일을 생각했습니다. 낡음의 끝이 아니라 계속 쓰고 싶은 마음의 다른 표현 같았습니다. 해진 곳을 가리기 위해 옷을 뒤집으면, 겉에서는 보이지 않던 안감의 선들이 드러납니다. 군데군데 엉킨 매듭, 색이 미묘하게 다른 실줄기, 그런데 바로 그 불완전한 안쪽이 바깥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우리 마음도 그러했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안쪽에는 매듭이 있고, 그 매듭이 어쩌면 우리를 세워 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줄자를 들고 제 코트의 길이를 재던 주인은 제 어깨와 소매, 주머니의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살폈습니다. 손톱 밑에 박힌 분필 가루가 가볍게 떨어졌습니다. 예수께서 “너희의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라고 하신 말씀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누군가의 하루가 이토록 세심하게 가늠되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 때문이겠지요. 계산이나 효율이 아니라, 그냥 아끼는 마음이 머문 시간 때문이겠지요.

생각해 보면, 우리도 매일 작은 수선을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느슨해진 관계의 단추를 다시 채우는 말 한마디, 흘러내린 마음의 밑단을 올리는 조용한 기다림, 지갑 속에 오래 넣어둔 사진을 꺼내어 잊지 않으려는 손길. 온전한 복원이 아닐 때가 더 많았습니다. 그래도 가까운 색의 실을 찾아 정성껏 이어 붙이면, 다시 걸을 수 있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주인은 붙여진 주머니를 뒤집어 보여주었습니다. 바깥에서 보이지 않을 작은 흔적들이 안쪽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 흔적이 지저분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옷이 살아온 날들이 그곳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기왕이면 아무것도 흘리지 않은 주머니를 바랐지만, 무엇을 담았다가 내어주고, 또다시 담는 일들이 이 외투를 외투답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을 나서며 계산대 옆 바늘꽂이에 빛나는 바늘 하나를 보았습니다. 꼭 필요한 순간에만 쓰일 그 가느다란 도구가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말도, 기도의 숨도 그렇게 쓰일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자주가 아니라, 필요할 때 제자리에 놓여 있는 침착함으로.

거리로 나오자 바람이 옷깃을 스쳤고, 손끝에 분필 가루가 남아 있었습니다. 금세 사라질 흔적이지만, 방금 지나온 고침의 시간이 손바닥에 잠깐 하얗게 눌어 있었습니다. 그 가루를 털어버리지 않고 잠시 지니고 걸었습니다. 고쳐진 자리에서 시작되는 발걸음이 생각보다 조용했고, 그 조용함이 오래 마음을 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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