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2월 26일 07시 01분 발행
도서관이 불을 줄여 가는 시간, 야외 반납함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금속으로 된 입구는 저녁 공기와 닿아 차갑게 식어 있었고, 손에 든 책의 종이는 하루 동안 품었던 온기를 조금 간직한 듯 따뜻했습니다. 책을 밀어 넣는 순간 ‘툭’ 하고 울리는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 긴 줄을 살짝 끊어 주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러고 나면, 무게가 아주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표지 안쪽에는 여러 해 동안의 대출 기록 스티커가 겹겹이 붙어 있었습니다. 손글씨는 없었지만, 누가 어떤 계절에 이 책을 들고 갔는지, 어떤 자리에서 몇 장이나 넘겼는지, 스티커의 닳은 가장자리와 모서리의 닿은 촉감만으로도 어렴풋이 상상되었습니다. 낡아진 책등에는 손들이 지나간 흔적이 고르게 남아 있었고, 종이 사이사이에서 약간의 먼지와 잔향이 났습니다. 잉크 냄새인지, 오래된 종이의 숨인지, 그 둘 사이의 어딘가 같은 냄새였습니다.
하루를 떠올리면, 마치 빌려 읽던 책이었습니다. 아침에 서둘러 꺼내 들었고, 점심 무렵에는 접어 둔 페이지를 다시 펼쳤으며, 오후에는 메모를 남기듯 마음에 작은 표시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저녁이 오면 반납해야 했습니다. 책임을 다한 페이지도 있었고, 괜히 접어 두었다가 다시 펴면서 자국을 남긴 페이지도 있었습니다. 어떤 문장들은 눈가에 오래 머물렀고, 어떤 장면은 이해하지 못한 채 넘겼습니다. 그래도 해가 기울어 오면, 손에 쥐었던 오늘을 반납함 앞에 내려놓게 됩니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반납함의 안쪽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쪽에서 보는 것은 입구뿐입니다. 그 안으로 들어간 책이 어디에 포개지는지, 어떤 손이 다음을 준비하는지, 제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안심하고 책을 밀어 넣습니다. 기록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누군가가 받아 정리해 준다는 것을, 우리가 믿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그 믿음이 기도를 닮았다고 느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는 말씀처럼, 손에서 놓는 순간 이루어지는 어떤 신뢰가 있습니다.
오늘 당신과 저에게도 반납할 부분이 있었을 것입니다. 되돌릴 수 없는 실수의 문장, 자랑하고 싶다가도 부끄러워진 단어, 괜찮다고 말하고 돌아선 뒤 혼자 남겨진 공백. 무심히 끼워 둔 전표처럼 주머니 바닥을 건드리던 근심도 있었겠지요. 그것을 하나씩 꺼내 반납함 모양의 마음 입구에 가져다 대면, 안쪽은 여전히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남쪽으로 기울던 빛이 천천히 사라질 때, 보이지 않는 손이 조용히 받아 안는 장면을 상상하게 됩니다. 다그치거나 심사하지 않고, “여기까지 잘 왔다”고 말하는 듯한 기색으로요.
몇 해 전, 어떤 분이 빌려 간 책을 늦게 돌려주며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분의 표정은 지체된 날짜만큼 어두웠지만, 책은 오히려 사람 손길을 더 많이 닮아 있었고, 그만큼 사연을 품고 더 두터워진 느낌이었습니다. 우리의 늦은 반납들도, 혹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서둘러 가져오지 못한 마음들이라도,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 이야기의 무게가 달라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늦었다고 해서 무가치해지는 사랑은, 하나님께는 없다고 믿습니다.
도서관 바깥은 이미 어두워졌고, 반납함 옆 작은 조명 아래 작은 벌레들이 이따금 둥근 그림자를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 둘 책을 밀어 넣고, 아무도 박수치지 않는 조용한 행위로 하루의 경계를 통과했습니다. 저도 마지막으로 손에 묻은 종이의 향을 맡고, 오늘이라는 책을 조심스레 밀어 넣었습니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속삭임이 들린 듯했습니다. “그렇지, 이제 괜찮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방은 여전히 같은 무게였지만, 걸음은 조금 달라져 있었습니다. 내일이 오면 또 다른 책을 빌려 들겠지요. 아직 이해하지 못한 문장을 다시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의 페이지는 오늘로 충분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안쪽에서 누군가 정리하고 계신다는 확신 하나로, 마음의 등잔불이 은은히 빛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