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1월 08일 07시 01분 발행
도서관 문이 열리기 전, 반납함에서 낮은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옵니다. 금속 덮개가 한 번 숨을 쉬듯 흔들리고, 책 한 권이 안쪽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며 남기는 둔탁한 울림. 바코드 대신 사람의 시간이 찍혀 있는 듯한 소리입니다. 문턱의 차가운 공기를 지나 햇빛이 복도까지 스며오면, 직원이 상자를 열어 쌓인 책들을 두 손으로 조심스레 옮깁니다. 먼지 한 올이 비스듬한 빛 속에서 가볍게 떠다니고, 스캐너의 짧은 삑 소리가 새 모처럼 맑습니다.
그때마다 마음속에 문장이 하나 생깁니다. ‘돌려보낸다’는 말. 빌려 읽고, 기한이 되면 돌아오게 하는 이 단순한 질서가 새삼 고맙게 느껴집니다. 어떤 책은 끝까지 읽지 못했을지라도, 반납함은 묻지 않습니다. 표지 모서리가 닳아도, 페이지 사이에 마트 영수증이 끼어 있어도, 상자는 다 받아 줍니다. 사람의 하루도 이와 비슷한 얼굴을 지니는 때가 많지요. 끝내지 못한 일, 미루고만 싶은 마음, 다 적지 못한 문장들. 그럼에도 시간이 되면 우리는 무엇인가를 돌려보냅니다. 오늘을, 지금을, 내 손에서 천천히 떼어내어 안전한 곳에 맡깁니다.
줄에 서 있던 아이가 동화책을 반납하고 손바닥으로 덮개를 살짝 토닥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마치 “잘 돌아가” 하고 인사하는 듯했습니다. 한쪽에는 아주 얇은 시집이 있었고, 다른 쪽에는 지도를 잔뜩 담은 두꺼운 책이 있었습니다. 무게도, 내용도, 독자의 속도도 제각각이지만 돌아오는 길은 한 곳으로 모입니다. 그 상자 안에서 제목들은 한꺼번에 뒤섞이지요. 누가 먼저였는지, 누구의 손에 있었는지는 금세 중요하지 않아집니다. 떠났다가 돌아오는 일에는 그 자체로 위로가 있습니다. 더 좋게 읽겠다고 애쓰지 않아도, 그냥 제자리로 오기만 해도 충분하다는 표정이 있습니다.
살다 보면 마음에도 반납기한이 있습니다. 오래 쥐고 있던 생각, 손에 힘을 주며 놓지 않던 근심, “조금만 더 내가 붙들고 있으면” 하며 연장하던 자책. 어느 구절은 이렇게 속삭여 줍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낡은 대출 스탬프처럼 그 문장이 마음 한켠에 찍히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알게 됩니다. 돌아가야 할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버림이 아니라 돌봄이라는 사실을요.
반납함에서 책을 꺼내는 직원의 손길은 급하지 않습니다. 표지를 쓸어내리고, 접힌 귀퉁이를 살펴보고, 조용히 ‘반납 완료’ 표시를 남깁니다. 누군가의 시간과 주의가 그 위에 한 번 더 지나가며, 책은 다시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우리의 하루도 밤이 되면 그런 손길을 기다립니다. 어떤 설명도 요구하지 않고, 실패와 성취를 동일한 깊이로 받아들이는 손. 그 앞에서는 변명도, 과장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있었던 그대로를 내어놓으면 충분합니다. 거기서부터 다음 페이지가 생깁니다.
오늘의 저녁이 깊어질수록, 아침에 들었던 둔탁한 울림이 마음속에서 잔잔하게 되살아납니다. 하나의 끝이 다른 시작을 깨우는 소리. 어떤 날은 그 소리가 유난히 또렷해, 무릎 위에 포개어 둔 손이 조금 가벼워집니다. 다 읽지 못한 문장들이 있어도 괜찮고, 서둘러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괜찮다는 숨결이 함께 따라옵니다. 반납함이 제자리를 지키듯, 우리 삶에도 제자리를 지키는 자비가 있다는 것을 떠올려 봅니다. 그 자비 앞에서 오늘이라는 책장을 조용히 덮고 나면, 아직 흰 여백이 남아 있는 내일의 첫 장이 소리 없이 열린다는 것. 그 여백이 이미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