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죽이 숨 쉬는 새벽

📅 2025년 11월 08일 07시 01분 발행

새벽 어스름에 동네 빵집 불이 먼저 깨어납니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이 골목을 얇게 적시고, 밀가루 냄새가 공기 속 먼지처럼 가볍게 떠다닙니다. 긴 나무 작업대 위에 둥근 반죽들이 천으로 덮여 한숨 돌리는 모습, 마치 누군가의 이마 위에 얹힌 손바닥처럼 잔잔합니다.

제빵사는 급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반죽을 다루는 손이 일정한 리듬을 지키고, 접고 눌러 놓은 뒤에는 한참을 서성이지요. 그 사이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죽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호흡이 오르내립니다. 이스트가 조용히 일하고, 글루텐이 마음을 모읍니다. 손을 계속 대면 오히려 힘줄이 찢어지듯 결이 흐트러지고, 기다림이 지나치면 신맛이 도드라집니다. 적당한 온기와 시간이 반죽을 자기 자리에 데려다놓습니다.

삶도 그와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마음이 너무 오래 치대어질 때가 있습니다. 일정과 소식과 걱정이 서로 팔꿈치를 부딪치며 들어와, 우리 안의 결을 건드려 놓습니다. 그럴 때 종종 더 많은 설명, 더 빠른 해결, 더 단단한 다짐을 꺼내게 되지만, 기이하게도 그럴수록 마음의 탄력은 떨어지고 표면은 거칠어집니다. 반대로, 조용히 덮여 있는 시간이 주어지면 다르지요. 말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 맞서지 않아도 되는 밤, 따뜻한 숨결 하나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쪽에서부터 모양이 정리되는 때가 있습니다.

빵집의 ‘벤치 타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벤치에 앉혀 두는 시간. 손을 떼어내고, 반죽이 스스로 방향을 찾아가는 순간을 위해 남겨 둔 여백. 우리는 대개 성취와 완성에 마음을 둡니다만, 정작 삶의 깊이는 ‘숙성’에서 나는 것 같습니다. 누구도 알리지 않는 사이, 보이지 않는 안쪽에서 벌어지는 작은 발효. 그 과정이 지나고 나면, 같은 밀가루와 물로도 풍경이 달라집니다.

소금도 생각납니다. 짠맛을 감당하는 이 작은 가루가 반죽의 맛을 돋우고, 지나치지 않게 붙잡아 줍니다. 때로는 우리 삶의 소금이 관계의 말 한마디이기도 하고, 기억의 한 조각이기도 합니다. 짠맛은 후에 단맛을 깊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어제의 눈물이 오늘의 빵을 향기롭게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픔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그 짠맛이 제대로 섞여 들어가 더 넉넉한 풍미를 주기 때문이겠지요.

오븐의 불빛이 켜질 때, 반죽은 마지막으로 부풀어 오릅니다. 급격한 열 속에서도 안쪽은 더 부드러워지고, 겉은 단단한 껍질을 얻습니다. 어느 빵은 표면에 칼집이 나 있습니다. 그 자국을 따라 빵이 꽃처럼 벌어집니다. 상처처럼 보이는 선이, 사실은 숨구멍이자 빛이 스며드는 창이 됩니다. 마음도 비슷합니다. 도려낸 자리가 들숨과 날숨의 길이 되어, 그 틈으로 은혜가 들어옵니다.

빵집 문이 열리고, 아직 해가 오르기 전의 손님들이 하나둘 들어옵니다. 종이봉투가 사각거리며 따뜻함을 품습니다. 누군가는 이 빵을 식탁 위에 두고 가족과 나누겠지요. 누군가는 출근길에 한 조각을 천천히 떼어 먹으며, 묵은 생각을 삼킬 것입니다. 어쩌면 누구도 모르는 자리에서, 오늘 가진 온기가 다른 누군가의 허기를 덜어줄지도 모릅니다. 숙성의 시간은 언제나 자기만을 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직 차갑고 고요한 새벽, 반죽이 숨 쉬는 소리를 듣는 기분으로 하루가 시작됩니다. 서두르지 않는 온기가 사람 사이를 지나갈 때, 각자의 안쪽에서 조용한 발효가 일어납니다. 결과보다 결이 먼저 정돈되고, 말보다 숨이 먼저 고릅니다. 그리고 아주 가볍게, 오늘의 빵처럼 우리도 제 모양을 찾아가게 되겠지요. 그 가능성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따뜻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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