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2월 12일 07시 01분 발행
동네 외곽을 걷다 보면 늦은 시간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온실이 보입니다. 유리벽 안쪽에는 마치 새벽이 먼저 찾아온 듯한 빛이 번들거리고, 얇은 습기가 안에서부터 성에처럼 번져 있습니다. 누군가가 방금까지 온도를 살피고 나간 듯, 온도계의 눈금은 고요하게 제 자리에서 반짝입니다. 안쪽 흙은 밤의 색으로 더 깊어졌고, 아주 작은 잎들이 귀걸이처럼 물방울을 하나씩 달고 서 있습니다.
그 앞에서 잠시 서면, 유리벽을 타고 굴러내리는 물방울이 얇은 길을 만들다 서로 만나 하나의 선이 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낮 동안 마음에 붙어 있던 말들이 밤이 되면 이슬처럼 맺혀 묵음으로 흘러가는 장면과 닮았습니다. 호흡이 가까이 닿으면 유리에 작은 안개가 번지고, 이내 그 무늬는 사라집니다. 사라졌다고 해서 흔적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요. 유리 너머의 온기와 촉촉함이 그것을 받아들여 다른 생장으로 바꾸어 갈 테니까요.
온실 속에서는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타이머가 켜졌다 꺼지고, 미세한 물방울이 일정한 간격으로 흙을 두드립니다. 그 소리가 누군가의 조용한 기도로 들릴 때가 있습니다.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흙 아래에서는 조용한 통신이 오가고 있을 것입니다. 뿌리가 흙결을 더듬고, 어둠과 온기가 서로를 확인하는 일. 급하게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없는 밤의 일은 그렇게 진행됩니다.
우리 안에도 아직 때가 덜 된 마음들이 있습니다. 아무 말도 붙이지 못한 문장, 끝까지 읽지 못한 편지, 놓아주었다고 생각했지만 손바닥 어딘가에 여전히 남아 있는 무언가. 그 모든 것이 누군가의 다급한 충고가 아니라, 조심스레 덮어 주는 온기 속에서 천천히 풀리는 장면을 떠올리게 됩니다. 성급히 꺼내어 빛에 세워 보이면 금세 시들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오래도록 낮은 불을 지키는 일이 더 많은 것을 살려내곤 하지요.
성경에는 사람이 밤낮 자고 깨는 사이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되는지 알지 못한다고 적혀 있습니다(마가복음 4:27). 설명되지 않는 시간이 삶을 이룹니다. 이유가 분명해지는 순간보다, 이유가 보이지 않을 때를 건너며 자랐던 날들이 결국 우리를 지탱해 왔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사이에, 말해지지 않는 가운데에, 들리지 않는 선율로.
온실을 돌보는 이는 유리에 맺힌 물기를 소매 끝으로 슬쩍 거두고 나갑니다. 나가며 한 번 더 몸을 숙여 흙의 상태를 살피고, 손끝으로 잎을 가볍게 건드려보는 그 모습이 인사처럼 보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그 작은 손길은 밤의 균형을 바로잡아 줍니다. 불빛에 끌려온 작은 나방 하나가 램프 곁에서 한동안 머물다 조용히 어둠 쪽으로 돌아가는 장면도 스쳐갑니다. 어쩌면 어둠 역시 그 나름의 포근함을 품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손끝에 허브 향이 옅게 남아 있었습니다. 흙냄새는 오래된 서랍을 여는 듯했고, 그 냄새 속에는 돌아보지 못한 마음의 구석들이 하나둘 빛을 받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삶이란 거창한 결심보다, 누군가 지켜 본다는 사실이 주는 미세한 용기와 비슷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살핌은 말보다 먼저 도착하고, 눈에 띄지 않게 방향을 바꾸어 줍니다.
오늘의 마음이 유리 안쪽처럼 흐릿하게 김서려 있더라도, 그 흐림이 전부의 모습은 아니겠지요. 언젠가부터 지문처럼 남아버린 후회도, 여전히 이름 붙이지 못한 소망도, 이 밤의 온기 아래에서 천천히 다른 결을 찾아갈 것입니다. 아침이 오면 누가 보아도 뚜렷한 변화라고 말하긴 어려울지 모릅니다. 다만 아주 가느다란 줄기 하나가 눈에 띄게 길어져 있을 것입니다. 큰 환호가 필요 없는, 하루를 더 건너게 하는 미세한 안도. 그 안도는 어디에서 왔는지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