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구두손질

📅 2026년 11월 07일 07시 01분 발행

현관의 불을 조금만 켜 두었습니다. 노란빛이 신발장 문턱을 적시고, 작은 원목 상자에서 구두약 냄새가 은근히 올라옵니다. 오래된 솔을 손에 쥐면 사각사각 소리가 좁은 현관에 낮게 퍼집니다. 한 켤레를 무릎에 올려놓고 보면, 가죽의 주름 사이사이에 오늘의 먼지가 고요히 앉아 있습니다. 하루가 지나간 발자국이 이런 모습이었나 싶습니다.

왼쪽 발의 바깥쪽이 유난히 닳아 있습니다. 급히 걸음을 재촉하던 습관이 드러나는 모양입니다. 코끝에 남은 비 냄새처럼, 한낮의 분주함도 여기 가만히 남아 있습니다. 작은 돌을 밟았던 자리, 웅덩이를 피해 살짝 틀었던 순간, 멈출까 말까 망설이던 모서리들이 얇은 흠집으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늘의 발걸음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요. 서두름 속에서도 누군가에게 미소를 건네셨는지, 마음에 남은 말 한 마디가 신발끈처럼 느슨하게 풀려 있지는 않은지요.

약을 조금 묻혀 가죽 위에 올려놓으면, 바로 번쩍이지 않습니다. 스며들 시간을 먼저 요구합니다. 그 짧은 기다림이 제 마음에도 필요했습니다. 말하지 못했던 한숨이 가만히 내려앉고, 뒤늦은 미안함이 제자리를 찾습니다. 감사해야 했는데 지나친 얼굴들이 떠오르고, 오늘의 결을 따라 묵은 감정들이 풀립니다. 닳은 부분에 손이 오래 머무는 것처럼, 마음의 거친 면에도 따뜻한 시선이 오래 머물 때가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 빛이 어둠을 밀어내듯, 굳었던 마음이 조금씩 풀리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헝겊으로 천천히 원을 그립니다. 작은 동그라미가 커지면서, 희미했던 광이 미세하게 살아납니다. 빛은 요란하게 오지 않습니다. 손끝의 일정한 리듬, 기울기를 잃지 않는 호흡, 기다림이 만든 결과입니다.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큰 약속이나 거창한 결심이 아니어도, 작은 주의와 친절이 둘레를 바꿉니다. 냉장고에 붙여 둔 짧은 쪽지 한 줄, 식탁 위에 미리 데워둔 찻잔 하나, 서로의 이름을 천천히 불러 주는 그 호명이 하루의 끝을 밝혀 줍니다.

가끔은 제 마음도 오래 신은 구두 같습니다. 비를 맞고,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모서리에 긁히며 지나온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럴 때 떠오르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리라”(이사야 42:3). 거친 손길이 아니라, 상처에 깃털처럼 닿는 손길. 다그치지 않고, 조용히 문질러 빛을 살리는 마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우리를 다루신다는 믿음이 밤공기처럼 얇게 덮여 옵니다.

오늘 닦아 낸 신발을 바닥에 나란히 놓습니다. 낯선 반짝임이 아니라, 오래 보아온 얼굴에 돌아온 고요한 윤기입니다. 현관 불빛이 그 위에 얇게 앉아 서로의 광을 비춥니다. 먼지가 곧장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빛 속에서 제 자리를 달리합니다. 마음도 이 밤을 건너며 그런 변화를 맞이하는 것 같습니다. 아주 큰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어도, 내일 첫 걸음을 떠올리는 상상이 한결 부드러워집니다. 신발끈을 단정히 매던 손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고, 오늘의 자국이 내일의 길을 밝히는 작은 등불이 된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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