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0월 27일 07시 02분 발행
정오를 조금 지난 동네 우체국은 종종걸음 대신 느릿한 숨을 쉬는 곳처럼 보였습니다. 유리문 안으로 들면 종이와 잉크 냄새가 먼저 맞이하고, 번호표 발행기에서 뽑힌 얇은 종이가 손끝에서 살짝 떨립니다. 전광판에 붉은 숫자가 한 칸씩 넘어갈 때마다 창구 안쪽의 도장 소리가 또렷하게 들립니다. 탁, 탁. 무언가가 확실해지는 순간의 소리 같아 마음이 끌렸습니다. 제 차례는 아직 멀어 보였지만, 그 느린 리듬을 따라 숨이 잔잔해졌습니다.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사람들을 살폈습니다. 작은 상자를 노란 끈으로 묶어 들고 온 할머니가 있었고, 국제우편 서류를 쭈그리며 적는 청년도 보였습니다. 저울 위에 올려진 봉투들은 각자의 무게를 숫자로 드러냈습니다. 표시창에 뜨는 132g, 540g 같은 수치가 생소하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마음의 무게도 저울이 있다면 이처럼 담담히 나타날까 싶었습니다. 누구의 손에 들린 꾸러미든, 그 안에는 누군가에게 닿고 싶은 마음이 하나씩 누워 있겠습니다. 주소는 물리적 장소를 가리키지만, 사실은 누군가의 얼굴, 목소리, 그리움의 방향을 가리키는 지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제 손에 쥔 봉투를 쓸어보았습니다. 말로는 미처 못 전한 안부 몇 줄, 담담하게 눌러쓴 고마움 한 토막이 들어 있는, 얇지만 제게는 묵직한 봉투였습니다. 시편 37편 7절의 한 마디가 떠오릅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번호표가 천천히 줄어드는 동안 그 구절이 우체국의 공기와 섞여 가만히 저를 붙잡아주었습니다. 누군가의 손이 건넨 친절한 말처럼,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암시 같았습니다.
창구에서 도장은 단번에 찍히지만, 편지는 길을 따라 시간을 통과합니다. 발신인의 마음은 출발했고, 그 마음이 수취인에게 닿을 때까지 보이지 않는 손들이 이어 붙이고, 확인하고, 다시 건네겠지요. 어느 날 우리의 기도가 이런 편지들과 닮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완벽한 문장을 갖추지 못해도, 봉투를 정갈하게 접지 못해도, 주님은 삐뚤삐뚤한 글씨를 읽으시고, 부족한 우표를 대신 붙여주시고, 모서리가 헐지 않도록 테이프를 곱게 둘러주실 것 같습니다. 우리는 발신인으로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습니다. 마음을 적어 내어 놓는 용기 하나면 되니까요.
가끔은 반송 도장이 찍힌 봉투도 돌아옵니다. 수취인 불명, 주소불명, 우편함 초과. 우리의 기대와 계획도 이따금 그런 표식을 달고 다시 손에 쥐어지곤 합니다. 그때 마음이 무너지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혼잣말하듯 생각했습니다. 반송된 봉투를 들여다보면, 적어도 한 번은 길을 나섰다는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구겨진 모서리, 낯선 기호, 두어 번 더 찍힌 도장들. 돌아온 실패가 아니라, 다녀온 발자취에 가깝다는 사실이 조용히 보입니다. 방향을 고쳐 쓰고, 다시 붙일 우표를 마련해보게 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드디어 전광판에 62라는 숫자가 떠올랐습니다. 목소리가 제 번호를 부를 때, 저는 작은 떨림과 함께 창구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봉투를 저울 위에 올리고, 수신지를 다시 확인하고, 조심스레 건넸습니다. 직원의 손놀림은 익숙했고, 도장 소리는 한 번 더 분명했습니다. 탁. 그 짧은 울림에 이상하게도 제 어깨의 긴장이 조금씩 내려앉았습니다. 제 몫은 여기까지였고, 이제부터는 길과 시간이 맡아주리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삶에서도 이런 순간들이 있겠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정성을 다해 준비하고, 나머지는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기는 일. 그 사이에 기다림이 있고, 기다림 사이에 믿음이 자랍니다.
우체국을 나서며 손바닥 안 번호표를 접었다 펼쳤다 했습니다. 버리기에는 아까운 작은 종이 한 장이, 오늘의 마음을 대신 기록한 영수증 같았습니다. 누군가의 부름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는 사실, 제 차례가 반드시 온다는 경험, 그리고 제 안부가 누군가에게 닿을 것이라는 소박한 신뢰. 이 세 가지가 제 발걸음을 가볍게 했습니다. 문밖의 오후는 그저 오후였고, 저는 방금 맡긴 한 장의 봉투처럼, 오늘 하루를 누군가에게 잘 도착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조용히 품었습니다. 부름을 받고 걸어 나가던 순간의 숨결이 오래 남아, 저녁까지 작은 리듬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