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마음의 주소

📅 2025년 10월 20일 07시 01분 발행

오후의 작은 우체국은 낮은 기침 같은 소리를 냅니다. 번호표 전광판이 한 칸씩 넘어갈 때마다 짧은 신호음이 울리고, 카운터의 붉은 잉크패드에서는 잔향이 은근히 퍼집니다. 소인 도장이 봉투를 칠 때 나는 소리, 툭—찍. 유리문을 통과한 햇빛이 바닥에 길게 눕고, 그 위로 미세한 먼지가 씨앗처럼 떠다닙니다.

사람들은 각자 손에 쥔 것을 가지고 서 있습니다. 부드러운 회색 봉투, 모서리가 닳은 상자, 여행지의 풍경이 그려진 엽서. 그 안에는 늦어진 생일, 미처 전하지 못한 사과, 사진 한 장으로도 충분한 그리움이 조용히 앉아 있겠습니다. 제 차례를 기다리며 문득 생각합니다. 살다 보면 마음에만 써 둔 편지들이 참 많이 쌓입니다. 때를 놓치고, 말의 모양을 고르다가 더디고, “다음에”라는 막연한 약속이 한 해를 건너가기도 합니다. 부치지 못한 봉투는 서랍 속에서 가장자리부터 말려 올라갑니다. 그 종이의 굽은 선이, 어쩌면 제 마음의 굴곡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앞의 노신사는 보내는 사람 주소를 천천히 적었습니다. 글자 하나마다 손끝이 잠시 멈추고, 다시 숨을 고르는 듯했습니다. 직원이 말합니다. “오늘 날짜로 소인 찍어드릴게요.” 도장이 내려앉을 때, 오늘이라는 시간이 선명해졌습니다. 날짜는 시간을 증명하는 표식이지만, 그 위에 스며 있는 마음은 숫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보내는 일은 잃어버리는 일이 아니라, 믿는 일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거리를 건너갈 수 있다고, 그쪽에서 누군가 받아 줄 것이라고, 아직 건네지지 않은 이야기에 자리를 내어 준다고 믿는 일 말입니다.

기도도 문득 우편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표가 없어도, 주소를 정확히 쓰지 못해도, 주께로 가는 길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마음을 놓이게 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말이 모자라면 한숨이 문장을 대신하고, 눈물 한 방울이 우표처럼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돌아오지 않는 우편이 아니라, 반드시 도착하는 은밀한 통로를 지나갑니다.

오늘 저는 오래된 엽서 한 장을 골랐습니다. 두툼한 종이의 거친 촉감, 등잔불 아래에서 쓴 것 같은 색의 인쇄. 많은 말을 적지 않아도 충분한 날이 있습니다. 마음의 무게가 글자 사이사이에 묵묵히 앉아, 빈 칸까지 의미를 품게 합니다. 줄 서 있는 동안 어젯밤에 떠오른 얼굴이 생각났고, 그에게 건네고 싶었던 평범한 문장이 조용히 되살아났습니다. “바쁘다 하셔도 괜찮습니다. 당신이 떠오를 때 제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오래 돌아 적은 한 줄이 제 안의 매듭을 조금 느슨하게 했습니다.

문 뒤편 분류대에서는 알 수 없는 손길들이 바쁘게 오갑니다. 바코드가 찍히고, 크기와 목적지에 따라 상자가 옮겨집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의 손끝과 규칙이 한참 동안 그 여정을 돌보고 있겠지요. 생각해 보면 우리의 하루도 비슷합니다. 겉으로는 멈춰 선 시간 같아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근히 분류되고 이어지는 일들이 있습니다. 오늘도 누군가의 친절이 길을 열고, 다른 누군가의 인내가 받침대가 됩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말없이 우리를 재워 주는 손길이 있습니다.

저녁이 가까워지면 유리문엔 실내의 빛이 비치고, 문 닫힌 우체국 앞 가로등 아래로 택배차가 조심스레 주차합니다. 아직 도착하지 못한 것들이 먼 곳을 향해 출발합니다. 어쩌면 우리 안의 오래된 미안함과 슬픔도 그 빛을 따라 길을 찾아갈지 모르겠습니다. 내일 아침, 우편함 뚜껑이 열릴 때 나는 작은 철 소리처럼, 조심스러운 기쁨이 동네마다 깃들기를 바랄 뿐입니다.

오늘의 날짜가 우리 마음에도 소인처럼 찍힙니다. 무엇을 보냈는지보다, 어떤 마음으로 건넸는지가 잉크처럼 천천히 마릅니다. 마르고 난 자리엔 얇은 광택이 남습니다. 손끝으로 스치면 거의 느껴지지 않지만, 빛을 받으면 어느 각도에서든 분명해지는 그 미묘한 광택처럼, 은혜도 그렇게 우리 하루에 묻어 있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도착하는 순간의 가벼운 숨소리로, 우리는 그것을 알아보게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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