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1월 13일 07시 01분 발행
밤과 아침 사이, 집 안이 아직 말수를 아끼는 시간입니다. 주방 구석에 작은 주황빛이 하나 켜져 있습니다. 밥솥의 보온등입니다. 그 불은 눈부시지 않아 좋습니다. 집안의 숨결을 깨우지도 않고, 그렇다고 사라지지도 않는 온도로, 밤새 무언가를 조용히 지켜낸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뚜껑 안 어딘가에서 미세한 소리가 나고, 쌀과 물이 서로를 받아들인 향이 싱크대 위로 가만히 올라옵니다. 손바닥을 뚜껑 위에 얹어 보면, 다급하지 않은 따뜻함이 피부를 건넙니다.
그 앞에 서 있으면 마음에도 보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일들이 금방 식어 버리기도 하고, 식었다고 여긴 것들이 어느 결에 다시 미지근하게 깨어나기도 합니다. 사람 사이의 말도 그러합니다. 확실하다고 단정 지었던 문장들이 하루를 지나며 온도가 바뀌고, 서운했던 마음이 밤사이 조금 누그러졌다가, 아침의 숨을 마시며 다른 모양으로 자리 잡습니다. 삶은 언제나 뜨거움과 차가움 사이, 그 좁은 틈에서 익어 가는 것 같습니다.
밥솥의 ‘보온’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마음에 들어옵니다. 불을 세게 더하지 않고도 온기를 지키는 방식, 과열을 허락하지 않으면서도 식지 않게 붙들어 주는 배려.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는 모양도 어쩌면 이와 닮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눈에 띄게 드라마틱한 변화가 없을 때에도, 손을 대면 분명 느껴지는 온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정하게 흐르는 배려. “그는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며”(이사야 42:3)라는 말씀이, 오늘은 낡은 전구빛처럼 낮게, 그러나 확실하게 마음 안쪽을 비춥니다.
밥이 뜸을 들이는 동안,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오래 앓고 있는 분, 서류를 제출하고 답을 기다리는 분, 마음 한편이 무너져 말수가 줄어든 분, 생활비를 계산하며 주섬주섬 숫자를 맞춰 보는 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많은 것이 조용히 결정을 향해 움직이는 때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쌀알 사이사이에 스며드는 온기처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위로가 틈으로 찾아듭니다. 기도도 그런 모양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한 번 크게 울리고 사라지는 번개가 아니라, 밤새 낮아진 불빛으로 계속 이어지는 기도. 들려주고 싶은 문장보다 오래 머무는 침묵. 그 사이에 하늘의 숨이 내려와 마음을 적십니다.
보온등은 결코 우리를 재촉하지 않습니다. 괜찮다고, 아직 괜찮다고, 작은 빛으로 말없이 알려 줍니다. 서둘러 뚜껑을 열면 설익은 냄새가 올라올 때가 있듯, 인생에도 꼭 필요한 뜸이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기다림을 실패라고 오해하지만, 기다림 속에서만 들리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돌아보면, 가장 조용했던 시간이 가장 깊이 변화를 품고 있었습니다.
부엌 탁자 위에 놓인 그릇이 김을 머금고 있습니다. 첫 숟가락의 무게가 손에 닿으면, 밤새 지켜진 온기가 몸을 지나 마음에까지 번집니다.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이 많겠지요. 그러나 그 모든 사이사이에, 과열되지 않도록, 또 식지 않도록 우리를 붙드는 보온의 은혜가 흐르고 있습니다. 커다란 기적의 번쩍임 대신, 작지만 확실한 불빛으로. 그 아래에서 우리의 생각도 차츰 풀리고, 굳은 말들이 부드러워지고, 서로를 향한 마음이 식탁 위의 김처럼 천천히 퍼져 나갑니다.
이 아침, 보온등 하나가 가르쳐 준 사랑이 있습니다. 큰 소리를 내지 않는 배려, 서두르지 않는 인내, 멀리서도 닿는 온기. 그 온도에서 하루가 익어가면, 다 말하지 못한 기도도 언젠가 제 때를 만나 향기를 낼지 모르겠습니다. 작은 불빛이 꺼지지 않고 숨 쉬는 한, 우리도 서로의 곁에서 그 온기를 나눌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