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08월 25일 07시 01분 발행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시각, 동네 빵집 셔터가 천천히 올라가고 반죽의 냄새가 골목으로 스며나오곤 하더군요. 물기 머금은 린넨이 스테인리스 탁자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고, 금속 그릇의 옆구리는 따뜻한 공기와 닿아 서리처럼 흐릿합니다. 반죽을 긁어내는 스크래퍼가 가볍게 긁적이는 소리를 내고, 장갑 낀 손이 둥근 덩어리를 들어 올리면 그 안에서 낮고 잔잔한 탄성이 돌아옵니다. 말이 없는 시간인데도 공간이 가득 차 보이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조용히 일하고 있어서겠지요.
발효실의 작은 불빛은 새벽을 견디는 등불처럼 오래 켜져 있습니다. 온도와 시간, 소금과 물의 균형, 서두르지 않는 손놀림이 하나의 마음으로 모이면 반죽이 스스로를 들어 올리는 순간이 오더군요. 급하게 뜯으면 찢어지고, 너무 오래 두면 힘을 잃는 그 미묘한 때. 주인은 귀로 듣지 않고 손바닥으로 듣습니다. 손끝에 전해지는 미세한 탄력, 표면의 숨결, 안쪽의 부드러움. 그 감각을 믿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의 표정에는 묘한 평온이 있습니다. 어쩌면 삶도 그럴지 모르겠습니다. 설명하기에는 부족하고, 무시하기에는 분명한 그 사이의 신호를 듣는 일 말입니다.
우리 마음에도 저마다의 반죽이 놓여 있는 때가 있지요. 말이 채 익지 않은 관계, 내어놓기 어려운 습관, 쉽게 풀리지 않는 고집의 덩어리. 손을 대면 대는 대로 더 엉키는 순간이 오면, 더 많은 말과 더 빠른 계획을 얹고 싶은 마음이 앞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수록 온기가 먼저였다는 사실을 늦게 깨닫곤 합니다. 따뜻함이 스며들어야 결이 풀리고, 기다림 안에서야 형태가 생깁니다. 고요 속에서 서서히 부풀어 오르는 마음을 곁에서 지켜보는 분이 계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립보서 1:6). 달력으로 재기 어려운 속도지만, 때가 되면 손길은 쉼 없이 제자리를 찾아옵니다.
반죽이 제 힘으로 오르고 나면, 주인은 한 번 더 접어 올려 결을 맞춥니다. 찰나의 단단함과 깊은 부드러움이 서로 기대는 순간입니다. 겉면에 칼집이 그어지고, 오븐의 문이 열릴 때 퍼지는 빛은 꼭 오래 기다린 이름을 부르는 듯합니다. 갈색으로 익어 가는 표면에 작은 균열들이 핀 모양을 그리는데, 그 틈새마다 온기가 올라와 사람의 마음을 녹입니다. 쇼케이스에 막 올라온 빵은 혼자 있어도 ‘함께’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합니다. 누군가의 아침 식탁, 나눠 찢어 먹는 손, 부스러기를 모으는 조용한 동작까지. 시작은 아주 작은 반죽이었는데, 끝은 나눔이 되어 돌아옵니다.
오늘의 마음도 어쩌면 발효 중일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모양이 뚜렷하지 않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웅숭깊은 숨이 안쪽에서 일어나곤 하지요. 크게 들려오는 설명은 없지만, 한결같은 온기와 시간이 우리를 바꾸고 있습니다. 서둘러 결론을 내리기보다, 무엇이 우리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지 가만히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 삶의 깊은 곳에서 일하시는 분의 손이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이 엷은 안심이 되어 줍니다.
오븐에서 나온 빵을 종이 봉투에 담을 때, 따뜻함이 종이를 통해 손바닥에 번져옵니다. 그 온도는 오래 머물러 있지 않지만, 사라지는 동안에도 흔적을 남기지요. 오늘도 각자의 손바닥에 그런 온기가 남아 있으면 좋겠습니다. 말로 다 담지 못한 기도, 이름 붙이지 못한 소망, 설명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풀어 오르는 일들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하루가 조금은 견고해지는 듯합니다. 서두르지 않는 사랑이 우리를 살리고, 우리도 언젠가 그 사랑의 모양을 닮아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