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1월 17일 07시 01분 발행
동네 동전 빨래방의 문을 밀고 들어서면, 둥근 드럼들이 제각각의 속도로 돌아갑니다. 덜 마른 수건에서 올라오는 온기가 낮은 숨처럼 공간을 채우고, 동전 교환기에 떨어지는 금속 소리는 잠깐의 종소리처럼 귓가를 스칩니다. 구석 의자에는 누군가 두고 간 양말 한 짝이 접힌 채 앉아 있고, 자판기 물병에는 작은 물방울이 맺혀 있습니다. 사람들은 말수를 아끼고, 각자의 바구니 앞에서 시간을 접습니다. 이곳에서의 일은 대개 기다림입니다.
건조기 앞에 멈춰 서서, 저는 먼저 필터를 당겨 보았습니다. 회색과 푸른빛이 섞인 보풀이 얇은 구름처럼 포개져 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옷감이 서로 부딪히고 스치며 이 작은 가루를 만들었을까요. 아이의 티셔츠, 주방에서 기름을 닦아낸 행주, 누군가의 출근길을 따라다닌 셔츠 소매. 하루가 돌아 나오는 모서리마다 떨어져 나온 미세한 조각들이 한데 모여, 숨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필터를 비우니 따뜻한 공기가 더 잘 흐르고, 안쪽에서 고르게 마르는 기척이 들립니다. 소리의 결이 부드러워졌다고 할까요.
문득 마음의 필터를 떠올렸습니다. 말없이 쌓이는 서운함 한 줌, 생각보다 오래 품고 있는 미안함 한 줌, 덜 표현된 고마움의 잔결들. 크지 않아서 미뤄 둔 것들이 어느새 통로를 좁혀 놓을 때가 있습니다. 억지 설명보다 조용한 숨이 필요하고, 큰 결심보다 작은 손짓 하나가 더 나을 때가 있습니다. 빨래방에서 필터를 비우듯, 우리 안에도 자주 건드리지 않는 자리들이 있지요. 거기서부터 공기가 달라지는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은 갖고 계실 겁니다.
건조기 앞에서 젊은 학생이 이불커버를 접습니다. 바닥에 닿지 않으려 애쓰는 그 손끝이 참 정성스럽습니다. 한쪽에서는 배달 일을 마친 듯한 분이 장갑을 벗고 손을 비빕니다. 할머니 한 분은 앞치마 끈의 주름을 펴고, 작은 비닐봉지에 집게를 차곡차곡 넣으십니다. 특별할 것 없는 동작들이 오늘의 기도가 되어 올라갑니다. 다윗이 고백했던 “하나님,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시 51:10)라는 말이 건조기의 둔탁한 회전 소리와 함께 천천히 가라앉습니다. 정한 마음이란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필터의 먼지를 털어내듯 한걸음 물러서서 통로를 엶으로 시작되는 것일지 모릅니다.
이곳에서 기다림은 단순한 공백이 아닙니다. 물과 열과 회전이 보이지 않는 일을 해내는 동안,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을 접고 펴며 시간을 매만집니다. 누군가에게는 지나간 날의 습기를 걷어 내는 일이고, 누군가에게는 내일을 위해 향기를 입히는 일입니다. 손바닥에 전해지는 따뜻함으로 삶의 온기를 점검하고, 주머니에서 나온 영수증 한 장에 적힌 낡은 마음을 읽어 내려갑니다. 오래된 사과의 말이 그 작은 종이에 적혀 있다가, 오늘은 드디어 입술 가까이까지 올라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건조기가 멈추는 순간, 방금 전까지 서로 부딪히던 옷감들이 조용히 안정을 찾습니다. 바구니에 담긴 옷들은 이전보다 가벼운데, 손으로 안아 들면 묘하게 든든한 무게가 있습니다. 정돈된 열기가 사람을 안심시키는 때가 그렇습니다. 문을 나설 때쯤, 셔츠에서 나는 비눗물과 햇빛의 사이 같은 향기가 따라옵니다. 큰 변화라 부르기 어려운 작은 정리, 그러나 그것이 하루를 지탱하는 힘이 되는 날들이 있습니다. 오늘의 보풀을 한 줌 알아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속 길이 조금 넓어졌다는 것을 우리는 아마도 곧 알게 되겠지요.
이 조용한 방의 진동과 열기 속에서, 보이지 않는 손길이 삶을 말려 주고 있습니다. 돌아가는 드럼을 바라보다 보면, 끝내 제어할 수 없는 일들조차 어느 리듬을 찾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거창한 확신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흐름이 통하도록 작은 먼지를 털어 내는 마음, 그 마음이 우리를 다시 집으로, 서로에게로 데려다 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