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대 위로 흘러가는 이름들

📅 2025년 10월 12일 07시 02분 발행

늦은 저녁, 우체국 뒤편을 지났습니다. 유리벽 너머로 분류대가 길게 뻗어 있고, 상자들이 조용히 흘러갑니다. 붉은 스캐너 불빛이 번쩍이며 이름과 주소를 읽어냅니다. 사람들의 손은 빠르되 거칠지 않았습니다. 옮기고, 확인하고, 다시 놓는 움직임에는 한 사람의 안부를 다루는 마음이 스며 있는 듯했습니다.

길가 자판기에서 종이컵 커피를 뽑아 들었습니다. 얇은 종이컵이 품은 미열이 손바닥으로 번졌습니다. 무심히 한 모금 마시니 달큰한 냄새와 약간의 씁쓸함이 함께 올라왔습니다. 그 사이에도 분류대 위의 상자들은 제 갈 곳을 잃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에게 가는 작은 약봉지, 늦은 생일선물,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까지, 상자 겉면의 글자들이 말없이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하루도 저 장면과 닮아 있는지요. 사건과 소식, 기쁨과 염려가 차례로 흘러갑니다. 어떤 일은 눈에 띄게 반짝이고, 어떤 마음은 검은 테이프 아래 숨어 있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어디로 보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손이 있는 듯합니다. 헷갈리는 순간에도, 한 번 더 살피는 시선이 있는 듯합니다.

어릴 적 새해엽서를 쓰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받는 사람의 이름을 또박또박 적고, 주소를 실수할까 몇 번이고 되짚어 보던 저녁이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엽서 한 장이 얼마나 멀고 낯선 길을 건너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다만, 꼭 닿았으면 하는 마음만 알았습니다. 오늘의 기도도 어쩌면 그런 엽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서툴게 적은 문장, 지워졌다가 다시 적힌 한숨, 끝자락에 붙여둔 작은 용기. 그 모든 것을 읽어내는 분이 계심을 조용히 떠올려 봅니다.

“너희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짧은 말씀 한 줄이 유리벽 너머를 건너와 손등에 얹힌 미열처럼 느껴졌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숫자조차 세어 주는 마음이라면, 오늘의 미세한 변화도 놓치지 않으시겠지요. 누군가의 신음, 설명하기 어려운 침묵, 아무 일도 없는 듯 지나간 오후 네 시의 밝음까지도요.

종이컵을 쥔 채 분류대의 움직임을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흘러가는 것들은 많았지만, 흘려보내지는 않았습니다. 각각의 상자에는 정확한 이름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반송됨’이라 생각하던 날들도 떠올랐습니다. 미처 해명되지 못한 오해, 돌아오지 않은 연락, 제자리를 찾지 못한 표정들. 그 모든 우회가 완전한 실패가 아니었다는 것을, 조금 늦게 도착하려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오늘 장면이 말없이 가르쳐 주는 듯했습니다.

삶을 분류하는 기준은 때때로 우리를 버겁게 합니다. 급한 것과 중요한 것,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사이에서 마음이 자주 엉킵니다. 그럴 때면 누군가 조용히 옆에서 바코드를 읽듯 우리의 하루를 확인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서두르지 않는 호흡으로, 빚지지 않는 시선으로, 놓치지 않는 손길로요.

커피가 식어갈수록 손의 온도도 가라앉았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오히려 차분해졌습니다. 정해진 경로를 따라가는 것의 힘, 그 길의 끝에 누군가의 이름이 있다는 사실이 주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요. 저는 오늘 하루가 어디로 보내지고 있는지 천천히 떠올려 보았습니다. 누구에게 건네고 싶은 말 한 줄이 있는지, 제 안의 가장 진실한 주소는 어디인지, 그곳까지 무사히 닿을 수 있을지.

분류대 위의 상자들이 밤을 건너 누군가의 문 앞에 서듯, 우리의 마음도 제자리를 찾아갈 때가 있겠지요. 때로는 경유가 필요하고, 때로는 주소가 다시 쓰이기도 하겠지만, 결국 도착하는 이야기를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당신의 이름에도 그런 도착이 깃들기를, 유리벽 너머 조용히 일하던 손길을 기억하며 생각해 봅니다.

저는 다시 길을 걸었습니다. 종이컵의 마지막 미열이 가라앉을 즈음, 마음속 어딘가에 볼록하게 붙은 운송장이 느껴졌습니다. 보내는 이와 받는 이가 분명히 적힌, 작지만 분실되지 않을 표식. 그 표식이 우리를 오늘도 서로에게, 그리고 우리를 아시는 분께로 천천히 데려가고 있는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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