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실물 보관함 앞에서

📅 2026년 10월 20일 07시 01분 발행

구청 지하 복도를 돌면, 유리문 하나를 지나 분실물 보관실이 나타납니다. 투명한 상자들이 길게 놓여 있고, 얇은 라벨지에는 날짜와 장소가 적혀 있습니다. 눈에 띄는 빨간 목도리, 손때가 남은 머그잔, 작은 열쇠꾸러미, 운동화 한 짝, 만화 스티커가 붙은 어린이 가방도 보입니다.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이들은 오늘 하루도 조용히 기다리는 중입니다.

근처 책상에서는 직원 한 분이 목록을 정리하고 계십니다. 분실 접수서에 적힌 글씨를 따라 전화를 걸고, 연결되지 않으면 메모를 고쳐 쓰십니다. 낡은 볼펜 끝에서 작은 소리가 나고, 비닐 포장지에 부딪힌 먼지가 얕은 빛을 머금고 떠다닙니다. 누구의 이름으로라도 불릴 수 있다면 반가워할 것 같은 침묵이 방 안에 스며 있습니다.

가만히 서 있으면, 물건들이 가진 시간의 결이 느껴집니다. 주인의 손에서 떨어져 나온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빈자리, 그 사이에 묵은 공기와 희미한 향이 층을 이룹니다. 잃어버림에는 종종 말이 부족하고, 되돌려 받음에는 대개 눈빛이 먼저 찾아옵니다.

우리 마음에도 이런 보관함이 하나쯤 있지요. 끝내 전하지 못한 안부, 타이밍을 놓친 사과, 금세 잊힌 다짐, 한 번 더 믿고 싶었지만 망설였던 호흡. 이름표가 떨어진 감정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모양을 잃고, 어느 지점부터는 자기 것도 남의 것도 아닌 채 자리를 차지합니다. 생각날 때마다 덜컥 가슴이 내려앉다가, 일상의 분주함에 또 묻히곤 합니다.

그러다 우연히 옛 사진 속 얼굴을 마주치듯, 어떤 순간이 불쑥 다가오기도 합니다. 오래 미뤄둔 번호를 눌러 보던 저녁, 예상보다 밝은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흘러왔을 때처럼요. 그 말 한마디가 돌아오자, 마음속 어딘가가 제 주인을 되찾는 것 같았습니다. 기쁨이라 하기엔 조심스러운, 그러나 분명 가벼워진 숨이 있었습니다.

분실물 보관실을 둘러보며, 하나님 마음에는 ‘분실 목록’이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락이나 오기 없이, 이름으로 기억하시는 분.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 43:1)라는 말씀이 라벨지처럼 얇고 단단하게 마음 한편에 붙습니다. 우리가 잊어도, 잊지 않는 쪽이 먼저 기다리고 계신다는 사실이 묘하게 안심이 됩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오늘 하루의 사소한 마음들에도 조용히 이름을 붙여 보고 싶어집니다. ‘미안함’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상자, ‘고마움’이라고 적힌 봉투, ‘다시 시작’이라고 써 둔 작은 카드. 꼭 지금 열어볼 수 없다 해도, 이름을 확인하는 일만으로도 무게가 달라지는 때가 있습니다. 불러 줄 이름이 생기면, 길도 한결 또렷해지는 법이지요.

가끔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 보이는 시간이 깊이를 만듭니다. 주인을 만난 분실물이 조용히 품으로 돌아갈 때, 방 안에는 환호보다 안도의 숨이 먼저 흐릅니다. 직원의 미소가 짧게 번지고, 종이에 찍히는 도장이 낮게 울립니다. 되돌아감이란, 드러내지 않고도 분명히 느껴지는 회복의 방식 같습니다.

저녁이 가까워지면 형광등 불빛이 조금 더 하얘집니다. 상자 사이로 먼지가 한 겹 내려앉고, 라벨지 모서리가 미세하게 반짝입니다. 오늘도 누군가의 발걸음이 이곳을 향해 천천히 옮겨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 마음의 보관함에서도, 이미 어떤 것이 제 이름을 되찾아 나를 향해 오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하루는, 잃어버림과 되찾음이 아주 작은 숨결로 이어진 날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은 회복, 다만 알아보는 눈빛과 가벼운 손길이면 충분한 귀환. 유리문을 나서며 문득, 내 안의 라벨 몇 장이 살포시 제자리로 돌아앉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히 빛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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