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실물 선반 앞에서

📅 2026년 03월 17일 07시 01분 발행

빗줄기가 금세 그친 오후, 지하철 역사 한켠의 작은 문 앞에 섰습니다. 유리문 너머 분실물 센터에는 투명 상자들이 칸칸이 놓여 있었고, 젖은 비닐과 먼지 섞인 냄새가 희미하게 떠 있었습니다. 직원 한 분이 흰 장갑을 끼고 우산의 손잡이를 닦아 태그를 달고, 장갑 한 짝과 목도리, 열쇠꾸러미, 이름 적힌 노트 한 권을 날짜별로 정돈하고 계셨습니다. 라벨에는 “몇 월 며칠, 어느 출구” 같은 짧은 사연이 적혀 있었지요.

잠시 후 창구에 선 사람이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검은 우산인데 손잡이에 작은 흠이 있고, 펼치면 한 쪽 단춧구멍이 헐거워졌다고요. 직원이 상자 속을 더듬어 우산을 건네자, 그분 얼굴에 묘한 안도가 스며들었습니다. 새것이 아니어도, 그 손에는 익숙한 무게와 냄새가 돌아왔습니다. 긴장했던 어깨가 조금 내려앉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마치 물건이 주인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듯이, 둘은 다시 한 짝이 되었습니다.

거기 서 있자니, 마음 안에도 이런 선반이 하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쁘게 지나온 달력들 사이, 어디엔가 내려두고 온 것들 말입니다. 다 말하지 못한 미안함 한 조각, 건네려다 접어 둔 안부, 식탁 가장자리에서 멎어버린 웃음의 결, 잠들기 직전 잊고 만 짧은 기도의 문장. 스스로에게도 낯설어져 버린 표정 하나. 분명 제 것이었고, 없어지니 허전했지만, 어디에 두었는지 분명히 떠올라 주지 않는 것들입니다.

분실물 상자 속 물건들은 제각기 닮은 듯 달랐습니다. 같은 검은 우산이라도 손잡이의 굴곡, 펼쳤을 때의 소리, 젖음이 마를 때 남기는 자국이 모두 다릅니다. 마침 기다리던 사이, 어린아이가 곰 인형을 찾아 품에 안았습니다. 눌린 귀를 천천히 펴주던 아이의 손끝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또 어떤 어르신은 낡은 열쇠를 받아 주머니로 옮기며, “이게 있어야 마음이 놓여” 하고 중얼거리셨지요. 잃어버린 것이 돌아올 때, 그 한 사람에게만 통하는 무늬와 온기가 함께 돌아오는 듯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의 내면 선반에도 작은 태그가 달려 있는 듯합니다. ‘바쁜 오전에 접어 둔 위로’, ‘다툰 뒤 돌아서며 잃은 시선’, ‘선물처럼 남겨 둔 침묵’. 때로는 오래 묵혀져 색이 바랜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며 본래의 빛이 또렷해지는 것도 있습니다. 젖은 천이 마르며 무늬가 드러나듯, 기다림 속에서 선명해지는 마음의 질감이 있습니다. 기다림은 벌이라기보다, 다시 만남을 위한 숨 고르기 같았습니다.

신앙의 길에서도 비슷한 순간을 자주 뵙습니다. 기도가 길게 이어지지 않아도, 말씀 한 구절이 오래 품에 남아 있다가 어느 오후 문득 제 자리를 찾아오는 때가 있습니다. 이름 없이 흘러가던 하루들 속에서도, 누군가가 제 이름을 알고 부르는 듯한 고요가 찾아옵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 43:1)라는 말씀이 그날의 공기 속에 자연스레 스며들었습니다. 분실물 선반의 라벨을 넘어, 누군가의 손이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확신이 마음을 데워 주었습니다.

물건을 찾지 못하고 돌아서는 이도 있었습니다. 빈손으로 나온 그 걸음이 유난히 가벼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잃어버린 것을 애써 붙잡지 못한 아쉬움 사이로,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작은 믿음이 자리 잡는 듯했습니다. 어쩌면 그 빈손이 다음 만남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삶에서도 때때로 빈자리 덕분에, 꼭 들어맞는 것이 쑥 들어와 안정을 찾곤 하지요.

오늘, 선반 앞에서 한참을 서 있던 제 마음은 조용히 알게 되었습니다. 저마다의 일상은 분실과 회수의 반복이지만, 그 사이를 지키는 것은 기억과 기다림이라는 것을요. 이름이 확인되는 순간, 사소한 것들도 제자리를 되찾습니다. 그 자리에서 비로소 우리도 숨을 고르게 됩니다. 오랜만에 손바닥 온기를 되돌려 받는 물건처럼, 마음 한쪽이 천천히 제 온도를 회복하는 것을 느끼며, 문밖 소음을 지나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조금 다정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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