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2월 23일 07시 01분 발행
동네 사진관이 문을 닫은 저녁, 유리문 너머로 작은 붉은 등이 남아 있습니다. 현상실이라 부르는 그 좁은 방은 어둡지만, 아무것도 없는 어둠이 아니라 사진을 지켜 주는 어둠입니다. 흰 현상지가 얕은 쟁반에 누워 있고, 집게가 종이 끝을 잡은 채 물결을 천천히 만듭니다. 물은 잔잔하게 흔들리고, 타이머는 길게 숨을 들이마시듯 기다리는 소리를 냅니다. 금세 결과를 보여 주지 않는 공간, 그러나 가장 정확한 모양이 서서히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하루를 떠올리면, 여전히 말리지 못한 네거티브 한 줄이 마음 안에 걸려 있는 듯합니다. 밝혀 보려다 너무 밝게 해 버린 순간, 붙잡으려다 흐릿해진 마음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요즘 세상은 손끝으로 즉시 선명해지는 화면을 보여 주지만, 어떤 사실들은 한 번에 밝아지지 않나 봅니다. 눈을 자극하지 않는 빛, 조급함을 내려놓은 손길, 물에 잠기어 있는 시간 같은 것이 있어야 모양이 또렷해집니다.
현상액에 잠긴 종이는 불안해 보이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던 표면에 점들이 모이고, 선이 생기고, 마침내 얼굴의 윤곽이 나타납니다. 집게를 잡은 손이 쟁반을 살짝 밀었다가 끌어오면, 얇은 물결이 이미지를 어루만집니다. 강한 빛이 아니라 견딜 만한 붉은 등 아래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그다음은 물로 충분히 씻어 내는 시간입니다. 과한 것을 흘려보내려면 세게 문지르는 대신, 오래 물을 건네야 한다는 사실을 이 작은 방이 가르칩니다. 마지막으로 고정액의 특유한 냄새 속에서, 사진은 더 이상 번지지 않을 자리를 얻습니다. 그렇게 하루의 장면들이 집게에 매달린 채, 공기를 마시며 마른 하늘을 기다립니다.
신앙도 어쩌면 이런 현상실을 닮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눈부신 스포트라이트가 아니라, 상하지 않도록 지켜 주는 작은 불빛 아래 서서 기다리는 시간.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시편 34:18)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상처 난 필름도 버려지지 않고, 너무 노출된 틀림도, 어둠에 갇힌 모자람도 같은 방에서 다뤄집니다. 그 앞에서 우리는 증명하려 들지 않아도 됩니다. 물이 천천히 흘러가듯, 기도는 사정을 밀어붙이지 않고, 오늘의 장면을 물 위에 띄워 놓는 일에 더 가깝습니다. 집게처럼 거칠지 않게 붙잡는 손, 쟁반을 살짝 흔들어 주는 호흡, 기다림을 허락하는 침묵이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오늘의 한 컷 안에는 말보다 무거운 정적과, 너무 진했던 목소리, 미처 나누지 못한 미안함도 함께 담겨 있을지 모릅니다. 붉은 등 같은 마음 한 조각이 켜져 있는 곳에 그것들을 걸어 두면, 밤은 생각보다 부드럽게 움직입니다. 지나치게 또렷했던 부분은 물에 풀리고, 보이지 않던 표정은 서서히 나타납니다. 아침이 되면 사진의 모서리가 약간 말려 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 결이 살아 있다는 뜻일 겁니다. 선명함의 이유를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눈빛이 분명히 거기 있다는 것을 알아보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오늘도 그런 한 장이 우리 안에서 천천히 드러나고 있을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