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방에서 배우는 기다림

📅 2026년 02월 13일 07시 01분 발행

오후 늦게 동네 코인 빨래방에 들렀습니다. 바깥길에는 겨울 햇살이 길게 눕고, 안쪽에는 세제 냄새와 따뜻한 습기가 얇은 안개처럼 떠 있습니다. 동전을 투입구에 밀어 넣자 짧은 종소리 하나가 울리고, 그 소리와 함께 기다림이 시작되었습니다. 둥근 유리창 너머에서는 젖은 옷가지들이 서로를 스치며 돌아갑니다. 소매가 소매를 두드리고, 셔츠 깃이 유리벽을 살짝 문지릅니다. 가끔 주머니에서 빠져나온 영수증 한 장이 물 속에서 떠올랐다 가라앉고, 하얀 거품이 그 주위를 얇게 감싸 안습니다.

빨래의 순서는 언제나 비슷합니다. 충분히 적시고, 한동안 흔들어 돌리고, 고요히 멈추었다가, 다시 물을 갈아 헹굼을 거칩니다. 마지막에는 큰 소리를 내며 탈수하고, 건조기의 따뜻한 바람 속에서 시간을 더 보탭니다. 단순해 보이는 이 과정을 보고 있자니, 하루의 마음에도 이와 비슷한 물길이 흐르는 듯합니다. 모르는 사이 흡수한 말들, 수첩에 끼워 둔 작은 근심들, 손끝에서 떨어지지 않던 서운함의 가루까지 한데 얽혀 들어옵니다. 한 번의 헹굼으로는 다 사라지지 않고, 몇 번의 물갈이와 정지, 그리고 다시 움직임을 지나야 점차 가벼워집니다.

유리창을 탁탁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도 어쩌면 드럼 안의 옷가지들처럼 자기 모양을 잠시 잃어버리는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안팎이 뒤집히고, 방향이 바뀌어도, 물은 제 할 일을 하고, 거품은 스스로 가라앉습니다. 누군가는 이 기다림이 답답하다 말하겠지만, 기다림은 사라지는 시간이 아니라 정리되는 시간이라는 것을 이곳이 조용히 알려 줍니다. 성경은 “여호와께서는 기다리는 자에게 선하시다”(애가 3:25)고 속삭여 줍니다. 그 선함은 번쩍이는 기적의 모양이기보다, 표 나지 않게 고단함을 덜어내는 손길과 닮아 있습니다.

탈수의 순간이 오면 유리가 미세하게 떨립니다. 안의 소란과 달리, 밖의 의자는 그대로 둥글고, 벽시계의 초침은 한 칸씩 또박또박 전진합니다. 마음이 한껏 흔들릴 때에도 우리를 붙드는 어떤 일정함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숨을 너무 깊게 들이마시지 않아도 되는 리듬, 그 사이로 스며드는 따뜻함 말입니다. 기계 옆 필터를 비우는 걸 보니, 일주일 내내 옷에 매달려 다니던 보풀과 먼지들이 한 줌으로 모여 있습니다. 그 작은 더미가 이상하게도 위로가 됩니다. 손으로 쓸어 담을 수 있을 만큼, 우리의 피곤도 모이면 이렇게 작아질 수 있다는 뜻 같아서요.

건조기가 멈추자 조용한 경보음이 울리고, 미지근한 김이 문틈으로 번집니다. 수건을 하나씩 꺼내 접으니, 손바닥에 남는 온기가 마음까지 데웁니다. 접힌 자리에 생기는 반듯한 선을 보고 있자니, 우리 하루에도 이렇게 접히는 순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큰 장면만 찾느라 소소한 장면들을 놓치지 않도록, 서로의 가장자리가 엉키지 않도록, 서두르지 않는 손길이 사이사이에 머물러 주는 그런 시간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마른 헝겊처럼 거칠게 짜내시는 분이 아니라, 물에 맡기고 빛에 기대어 천천히 말리게 하시는 분 같다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문을 열고 나오니 해가 이미 낮게 기울어 있습니다. 비누 냄새가 코끝에 오래 머무르고, 팔에 안은 따뜻한 빨래가 한동안 품을 데웁니다. 오늘의 말들 중에 누군가의 마음을 누그러뜨릴 향기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빨래방의 타이머가 0을 가리킨 것처럼, 우리의 근심도 언젠가 제 시간을 채우고 멈추겠지요. 그때까지 이어지는 이 조용한 기다림이, 각자의 자리에서 은근한 빛이 되기를 소망하며, 저녁 공기를 천천히 건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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