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1월 12일 07시 01분 발행
이른 아침, 동네 빵집 앞을 지나면 철문이 반쯤 열린 틈으로 고요한 열기가 흘러나옵니다. 선반에는 갓 구운 식빵이 줄지어 서 있고, 뜨거움이 사그라지며 껍질이 아주 작은 소리를 냅니다. 마치 밤새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서서히 풀리는 듯합니다. 반죽을 치대던 손의 힘은 잠시 쉬고, 이제는 기다림이 일을 하는 시간입니다.
빵은 불에서 막 꺼냈다고 바로 칼을 만나지 않습니다. 너무 뜨거운 때를 지나야 속살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김이 빠지고 결이 자리 잡을 때 비로소 한 조각이 단정해집니다. 빵집 주인은 그때를 압니다. 굽는 일과 식히는 일이 함께 빵을 만듭니다. 뜨거움으로 시작했지만, 온기가 제 온기를 찾도록 놓아두는 시간, 그 시간까지가 굽기의 완성입니다.
우리의 하루도 그렇습니다. 기쁜 소식이 마음을 데우고, 섭섭함이나 억울함이 갑자기 끓어오릅니다. 막 끓은 마음으로 말을 꺼내면, 아직 결이 잡히지 않은 문장들이 쉽게 부서집니다. 설명하려다가 더 헝클어질 때가 있습니다. 오래된 숨 한 번 고르는 침묵이 해결은 아니어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의자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 식히는 동안 보이지 않던 모양이 드러나고, 숨겨진 단맛이 떠오릅니다.
오래된 시편의 한 구절이 마음속에서 천천히 젖어듭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그 ‘가만히’는 도망이 아니라 숙성의 고요처럼 느껴집니다. 말이 없는 사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아차릴 만큼 마음이 맑아지는 시간. 뜨거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열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에 가까운 고요입니다.
집에서도, 일터에서도, 교회에서도 그런 순간들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짧은 말이 오래 걸립니다. 바로 답을 쓰고 싶은 손가락이 달아오를 때, 새벽 빵집의 선반이 떠오릅니다. 우리 안의 반죽이 아직 자라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하나님이 빚어 주신 결이 제 위치를 찾아가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마음 가까이에 바람이 드나들 공간을 남겨두면, 말의 온도도 함께 맞춰지는 것 같습니다.
시간은 가혹할 때가 많지만, 때로는 가장 다정한 조리법이 되기도 합니다. 서둘러 자른 빵은 모양을 잃고, 너무 늦은 칼질은 온기를 놓칩니다. 사람 사이의 사이도 그렇습니다. 덜 식었을 때 부딪히면 서로의 뜨거움에 데이기 쉽고, 너무 식어버리면 나눌 향기가 사라집니다. 오늘의 대화가 좋은 때를 만나길 바라는 마음이 듭니다. 마음과 말, 숨과 침묵이 서로를 돕는 시간대가 있다는 사실이 안도감을 줍니다.
이윽고 가게 문이 활짝 열리고, 첫 손님이 들어와 조심스레 한 덩이를 고릅니다. 칼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부스러기가 부드럽게 떨어지고, 얇은 김이 한 번 더 올라옵니다. 그 조각을 받아 든 아이의 눈이 조금 더 커지는 모습, 기다림이 맛으로 변하는 순간이 보입니다. 삶에도 그런 때가 있음을, 아주 작게 고개가 끄덕여지는 듯합니다.
오늘, 아직 뜨거운 말과 생각 사이에 조용한 틈이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서로의 향이 퍼질 만큼만 식는 시간, 그 사이에 스며드는 보이지 않는 손길. 빵이 식는 동안 들리는 작은 소리처럼, 당신 안에서도 무언가 단정해지는 소리가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그 소리를 알아보는 마음만으로도, 하루가 한결 부드러워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