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2월 14일 07시 01분 발행
오늘 저녁, 부엌 불을 끄고 나오려다 선반 위 유리병들이 문득 눈에 들어왔습니다. 투명한 몸을 가진 채로 제 안을 고요히 비추는 병들, ‘말린 귤껍질’, ‘들소금’, ‘국화잎’, ‘작년 여름 매실’ 같은 작은 라벨들이 수줍게 매달려 있습니다. 누군가의 손글씨가 날짜를 품고 있어서, 그때의 공기와 웃음, 덥고 길던 오후가 병 속에 곱게 접혀 있는 듯 보였습니다. 캄캄한 부엌에 남은 건 그 유리 표면의 은빛 윤기와, 어렴풋이 감도는 냄새 하나—시간이 천천히 익어가는 냄새였습니다.
삶에도 이런 병들이 있지요. 그날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담아 두고 싶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다시 열어보기 싫은 쓴맛의 날도 있고, 오래 묵혀 둘수록 맑아지는 향을 품은 날도 있습니다. 다정한 말 하나에 가벼워진 어깨의 감촉, 말끝이 날카로웠던 저녁의 후회, 비 오는 날 우산을 나눠 받던 골목의 습기까지—어쩌면 우리도 모르게 라벨을 붙여 선반 어딘가에 올려두고 지나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병뚜껑을 돌릴 때 나는 얇은 소리는 늘 같지만, 그 안에서 올라오는 맛과 향은 늘 다릅니다. 사람의 마음도 비슷합니다. 어떤 일은 금세 잊히기를 바라지만,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말이 되는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설명되지 않던 슬픔이 어느 날 차분한 문장으로 자리 잡고, 서러웠던 틈이 누군가의 손을 잡아줄 통로가 되곤 합니다. 기다림과 온도의 몫이 있는 셈입니다. 너무 빨리 익히려 하지 않을 때, 은근한 불에 올려 둔 국처럼 제맛을 찾아가는 과정이 있지요.
성경은 우리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셨나이다”(시편 56:8) 하고 속삭입니다. 흘러 사라지는 줄만 알았던 것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뜻이겠지요. 말로 꺼내지 못했던 울컥함,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못한 마음의 스크래치 같은 것들까지, 하나도 유실되지 않았다는 조용한 약속처럼 들립니다. 누군가 정성 들여 라벨을 붙이고, 먼지 쌓이지 않게 닦아두듯이,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의 하루들을 그렇게 간수하고 계신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오늘의 무게가 곧장 답이 되지 않더라도, 서둘러 의미를 만들지 않아도 괜찮아 보입니다. 지금은 그저 이 온도와 향을 가진 채, 이름을 붙여 둔 어떤 날로 남아 있어도 충분하다는 마음이 듭니다. 언젠가 적당한 때가 오면 스스로 뚜껑을 여는 순간이 있겠지요. 그때 우리는 알게 될지도 모릅니다. 오래 두었다고 상한 것이 아니라, 오래 두었기에 비로소 맑아진 것이 있었다는 사실을요.
부엌 불을 끄고 나오는 발걸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선반 위 유리병들이 어둠 속에서도 제 자리에서 반짝이듯, 우리 안의 여러 날들도 제 자리를 지키며 조금씩 익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의 마음도 그 곁에 살포시 놓여 있는 듯합니다. 굳이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향을 품은 채, 조용히.